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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갈수록 더 ‘위험한 정권’

등록 2011-01-11 20:59수정 2011-01-11 21:02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소통부재 정권, 국민무시 정권, 복지혐오 정권, 밀어붙이기 정권, 고소영 정권, 민간독재 정권, 신관치 정권, 삽질 정권, 안보무능 정권…. 이명박 정권을 일컫는 다양한 별칭이다.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한 점이 있겠지만,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다. ‘위험한 정권’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험을 해결하기는커녕 더 증폭시키고, 스스로 위험요소가 되는 정권이라는 뜻이다.

겨우내 온나라를 휩쓸고 있는 ‘구제역 재앙’이 바로 그렇다. 전국 소·돼지의 10분의 1 가까이가 매장됐으나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초기 차단에서부터 확산 억제, 다음 단계 대비 등에 모두 실패하고 있다. 지난해 서해가 북쪽 공격으로부터 무참하게 뚫렸다면 이번에는 가축전염병 관리망이 무력화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무자격 측근인사’ 중용에 따른 인사파동은 되풀이된다. 4대강 삽질도 거침없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작정 밀어붙이고 꼭 해야 할 일은 못 한다. 위험한 정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위험의 수준은 정권 출범 이후 계속 높아졌다. 2008년 촛불집회가 국민적 저항운동으로 번졌을 당시에는 정권의 일방통행식 행태와 소통부재가 위험의 주된 요소였다. 이 단계에서 국민 뜻을 잘 헤아리기만 했어도 사태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권은 이후 반대로 나갔다. 민간인 사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언론관련법을 날치기 처리하는 등 음습한 권력강화 시나리오를 무자비하게 진행했다. 많은 국민을 적으로 여기고 민주주의를 형해화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집권 3년차인 지난해 봄부터는 국가의 기본 책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구제역 재앙 등이 잇따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정부 기능이 안에서부터 무너져내리는 양상이다.

왜 이렇게 위험한 정권이 됐을까.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낡은 의식과 행태다. 선진국에서 1980~90년대에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담론이 무성했다. 산업사회는 역사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무모한 모험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하면서까지 부의 생산에 매달리는 사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산업사회 논리에 충실할수록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의 심화, 질병의 국제화, 사회의 파편화와 민주주의 위축 등의 위험도 커진다. 따라서 지금 사회의 위험들을 풀어나가려면 산업사회 논리부터 뛰어넘어야 한다. 여기서 필수적인 요소가 진지한 성찰과 활발한 소통이다. 위험과 신뢰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신뢰가 무너지면 위험도 증폭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정권은 여전히 산업사회 논리의 극단적 형태인 개발독재를 그대로 답습한다. 그 대표적 표현이 4대강 사업과 민주주의·복지 혐오다.

다른 하나는 무능과 도덕적 타락이다. 안보 분야에서는 중장기적 비전과 가온머리(컨트롤타워) 기능이 취약해 온갖 갈등을 심화시키고, 신속하고 짜임새 있는 대응이 요구되는 구제역 사태 등에서는 방향조차 제대로 못 잡아 허둥지둥한다. 공정한 시장질서 유지가 책무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물가단속 기관으로 바뀐 것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눈앞의 작은 이익은 철저하게 챙긴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까지 대상으로 한 낙하산 인사의 규모는 이전 정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청와대 인사들의 이권 개입 사례도 줄을 잇는다.

우리 사회의 위험도는 안보, 민주주의, 국민생활·서민경제 등에서 모두 높아졌다. 그 한가운데에 ‘위험한 정권’ 그 자체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민주주의 복원이다. 성찰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성찰을 요구하고, 소통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소통을 압박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저항권을 행사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분명하게 책임을 묻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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