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국제뉴스팀장
김영희
국제뉴스팀장
국제뉴스팀장
한달 전 이 난에 ‘분노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프랑스·미국 등 서구 선진국 문화를 휩쓰는 분노라는 코드에 대해 글을 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2011년은 2012년 미국·프랑스·러시아 등 서구 강대국들의 대선의 전초전으로만 주목했다.
하지만 이미 아랍세계에선 분노의 시대가 행동으로 시작됐다. 수십년간 이스라엘과의 관계, 테러와의 관계, 이슬람주의 등 종교 같은 이슈 속 ‘대상’으로만 다뤄졌던 아랍세계 사람들이 ‘주체’로 나서는 순간을 매일매일 지켜보는 것은,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이다.
서구 또한 이러한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 이집트 시위 초기만 해도 서구 언론들은 ‘왜 이집트는 튀니지가 될 수 없는가’ 하는 분석을 쏟아냈다. 튀니지처럼 교육받은 중간계층이 중심이 아니고, 실업문제는 너무나 오래돼 사람들이 무기력하고,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경찰 장악력은 강고하고….
시위 나흘째인 지난 28일 ‘카스르 엘닐 다리 전투’는 모든 것을 바꿔놨다. 아프리카 대륙 최초라는 힐튼호텔 바로 곁에 있는 이 다리에 경찰은 오후 내내 최루탄을 쏴댔지만, 사람들은 다시 최루탄을 집어던지거나 나일강 속으로 처박아버렸다. 수시간에 걸친 일진일퇴 끝에 마침내 저녁 무렵 시위대가 다리를 장악하며 해방(타흐리르) 광장으로 가는 길이 뚫렸다.
지난 1998년, 카이로에 갔을 때도 이 다리는 온종일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정차하지 않는 버스에 뛰어올라타고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실은 낡은 버스들의 곡예운전, 온종일 낚시를 하거나 빈둥거리는 실업자들로 가득 찼던 그 다리에서 이집트는 무력해 보였다. 지금 화면 속 같은 다리 위의 이집트인들은 다르다. “가장 놀라운 건 사람들이 무바라크 정권에서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13년 사이 무엇이 바뀐 걸까?
이집트인들의 분노가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게 우선일 게다. 미국 중앙정보국 출신 에이밀 나클레는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지금 상황을 무바라크 정권과 아랍 현실에 대한 미국의 오판이라 비판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미국은 친미정권 유지를 위해 무시했던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카이로 미국대사관의 전문들은 몇년 전부터 경찰의 야만적 폭력성과 성난 민심을 지속적으로 보고해왔다.
이와 함께 위성방송이나 트위터·페이스북을 비롯한 인터넷의 힘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의 16만명 블로거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사회와 미디어에 영향력을 급속히 넓혀왔다. 1일 이집트에선 마지막 인터넷업체의 서비스마저 끊겼지만 불붙은 시위를 막을 순 없다. <알자지라>뿐 아니라 미국의 <시엔엔>(CNN)까지 이집트 시위를 생중계하는 모습은, 미디어 글로벌화의 축복일지 모른다. 80년 광주나 89년 천안문의 유혈진압이 전세계에 생중계된다고 생각해보라!
최근 미국에서 화제인 예브게니 모로조프의 책 <인터넷 망상>(The Net delusion)은 인터넷이 종종 강한 자는 더 강하게, 약한 자는 더 약하게 만들 뿐이라며, 구글·페이스북 등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이버 유토피아니즘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동의한다. 최근의 아랍 격변을 지켜본 권력자들은 어떻게든 더 디지털 세계를 장악하려 할 것이다. 지금 아랍세계의 혁명 기운이 더 큰 혼란으로 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밤늦게 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지난 두달간 아랍세계는 50년의 세월을 건너뛰었다”라는 이집트인의 트위트를 읽었다. 지난해 말 위키리크스부터 최근 아랍까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미디어를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전세계도 그만큼 전진했다. dora@hani.co.kr
최근 미국에서 화제인 예브게니 모로조프의 책 <인터넷 망상>(The Net delusion)은 인터넷이 종종 강한 자는 더 강하게, 약한 자는 더 약하게 만들 뿐이라며, 구글·페이스북 등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이버 유토피아니즘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동의한다. 최근의 아랍 격변을 지켜본 권력자들은 어떻게든 더 디지털 세계를 장악하려 할 것이다. 지금 아랍세계의 혁명 기운이 더 큰 혼란으로 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밤늦게 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지난 두달간 아랍세계는 50년의 세월을 건너뛰었다”라는 이집트인의 트위트를 읽었다. 지난해 말 위키리크스부터 최근 아랍까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미디어를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전세계도 그만큼 전진했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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