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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은유의 영향 / 오철우

등록 2011-02-27 19:26수정 2011-02-27 19:33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김동명 ‘내 마음은’)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조지훈 ‘승무’)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질 내 마음은 호수 같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감춘 고깔은 나비가 된다. 묘사하기 까다로운 대상의 특징을 익히 아는 대상의 특징으로 바꿔 표현하는 은유의 사례들이다. 은유는 멋진 문학언어로도 읊조려지지만 일반언어에도 많이 쓰인다. 정계 지각변동, 인생의 황혼, 범죄와의 전쟁 같은 말도 낯익은 은유다.

은유가 우리 추론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실험결과가 과학저널에 발표돼 눈길을 끈다. <플로스원>(plosone.org) 2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한 도시의 범죄를 ‘(잠복하다가 습격하는) 야수’에 비유한 글과 ‘(도시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에 비유한 글을 피실험자 1485명한테 읽게 한 뒤 범죄대책을 물었다. 은유의 두 단어만 빼면 같은 범죄 현황·숫자를 담은 글이다. 그랬더니 야수 은유를 접한 그룹에선 71%가 법집행·처벌의 해법을 선택했으나, 바이러스 은유의 글을 읽은 그룹에선 그 수가 54%로 적었다. 사회개혁이 먼저라는 응답은 바이러스 은유에서 훨씬 더 많았다. 다른 실험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야수는 추적·포획을, 바이러스는 원인규명과 예방을 떠올리는 반응을 끌어냈을 것이다.

논문 발표에 맞춰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를 쓴 물리학자 필립 볼은 “과학자들은 대중과 자신들을 오도하는 대가를 치르며 은유에 매달리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묻는 칼럼을 <네이처>에 썼다. 인기있는 과학작가 에드 용은 블로그에 “쉽고 정확하게 써야 하는 과학작가한테 올바른 은유를 찾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는 소감을 적었다. 은유 덕분에 말의 세상은 풍성해졌지만 은유는 은유임을 알아야 은유와 실재를 혼동하지 않고서 은유의 묘미를 즐길 수 있겠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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