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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회책임경영 펴는 ‘착한기업’에 인센티브를

등록 2011-03-20 20:11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경제·환경·사회 균형발전 위한
ISO26000 모델 올해부터 발효
소비자들도 ‘책임소비’ 미덕을
[싱크탱크 맞대면]
‘사회책임경영(CSR)’ 갑론을박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지금 우리 시장은 책임 있는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이들을 위한 당근을 더 많이 심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의이고 진보이며, 동시에 효율이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읽어 주시던 동화책의 결말은 늘 비슷했다. ‘착한 그들은 결국 승리했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이 줄거리는 기업의 세계에서도 사실일까? 착한 기업, 책임 있는 기업은 무한경쟁사회에서도 성공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사회책임경영(CSR), 또는 지속가능경영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초과이익공유제’를 놓고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 사이에 벌어진 설전이 이 화두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사회책임경영 국제표준인 ISO26000이 올해부터 발효되면서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상 최악의 지진해일 재난에 대한 기업의 지원도 늘어나고 있다.


사회책임경영을 다른 말로 ‘지속가능경영’이라 부른다. 이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내포한다. 첫째는 우리가 속한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이고, 둘째는 개별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다. 대체로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경영을 하는 기업은, 개별적 지속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는 게 기본 취지다.

ISO26000에서는 사회책임경영을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한 개별 조직의 노력’으로 정의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경제·환경·사회 세 영역을 균형 있게 고려한 발전 모델이다. 과거 경제 성장만 추구하던 발전 모델이 기후변화와 빈곤 등의 심각한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낳게 되자, 이를 반성하며 나온 개념이다.

사회책임경영의 사회적·경영적 연결고리
사회책임경영의 사회적·경영적 연결고리
그런데 만일, 기업이 속해 있는 사회의 법과 제도와 관습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사회책임경영을 하는 기업이 더 장수할까?

기업은 제약조건 아래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제도는 중요한 제약 조건이다. 만일 한 사회의 법과 제도와 관습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착한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제도가 기업에 단기 이윤 극대화, 외형 성장, 비용 절감만을 요구한다면, ‘착한 기업’은 오히려 성공하기 어려워진다.

1980년대 나이키를 돌이켜 생각해 보자. 본사에서는 디자인과 마케팅만을 맡고 아시아 저임금 국가에 생산과정 전체를 아웃소싱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싼값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나이키의 하청을 받은 저임금국 업체들은 어린이를 고용해 학교도 보내지 않고 저임금 장시간노동을 시켜 물건을 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의 소비자단체들이 들고일어나 불매운동을 하고, 사회책임 투자자 집단이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나이키는 두 손을 들고, 제3세계 국가에서 아동노동을 없애고 노동 기준을 대폭 향상시키며, 협력업체 감사를 사회적 책임 관점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사회운동이라는 ‘제도’가 사회책임경영을 이끌어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착한 기업’을 성공하게 해주는 제도적 환경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말은 많지만 행동은 적고, 담론은 많지만 제도는 취약한 상황이다.

가장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은, 사회적 책임 관련 보고서 발간을 의무화하는 제도다. 유럽연합을 비롯해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주요국 증권거래소들은 속속 사회책임 보고서 발간을 의무화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면 재무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이를 재무 정보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 관련 정보로 넓히자는 이야기다. 투자자나 소비자는, 기업의 재무 현황뿐 아니라 사회책임경영 현황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다.

2010년 60여곳의 한국 기업이 사회적 책임 관련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내용은 미화 일색이며,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적자가 나도 그대로 보고하는 재무 정보와는 딴판이다. 책임 있고 객관적인 기관에서 제3자 검증을 엄격하게 받아 보고서를 발간하도록 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또한 비용부담 때문에 대기업 중심으로 보고서가 발간되는데, 중소기업도 사회책임 관련 보고서 발간이 가능하도록 지원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책임도 막중하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미래를 맡아 운용하고 있는 곳이다. 단기적 수익률만 생각해서 국민의 미래를 파괴하는 반환경적, 반사회적 기업에 투자한다면 그야말로 직무 유기이다. 주식 자산 전체가 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슈를 고려해 투자되도록 해야 한다.

그 위상이나 책임에 견줘,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관련 대응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미국의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가 애플의 지배구조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오죽하면 유럽 연기금이 먼저 나서서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사회책임경영 관련 문제제기를 하는 판국이다.

소비자의 역할도 크다. 가장 큰 단일 소비자인 정부 조달체계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 구매 때의 평가 항목에 해당 기업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과 관련된 지표를 비중 있게 넣어야 한다. 정부 조달 참여 때 사회책임경영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소비자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학교에서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값싼 제품을 골라 사는 ‘알뜰 소비’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착한 제품을 골라 사는 ‘책임 소비’가 미덕인 시대이다. 미래 소비의 주역인 지금의 학생들이 책임 있는 소비자가 되도록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제도가 시장에 개입하면 비효율이 생긴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시장은 그 자체가 제도다. 그 제도를, 약탈자가 실패하고 책임 있는 이가 성공하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선한 기업을 돕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극단적 자유시장론자로 알려진 밀턴 프리드먼조차도 1970년에 쓴 글에서 “기업 경영자의 책무는 ‘법과 윤리적 관습이 내포한 사회의 기본 규칙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돈을 버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착한 기업’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나쁜 기업’을 솎아낼 수 있는 법과 윤리적 관습을 마련해야 한다. 밀턴 프리드먼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시장은 책임 있는 기업에 우호적이지 않다. 이들을 위한 당근을 더 많이 심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의이고 진보이며, 동시에 효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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