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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낯선 확률적 위험, 방사선 / 오철우

등록 2011-04-17 20:22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얼마 전 일본에서 날아온 방사성 물질이 섞여 비가 내리자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적절한지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여덟살 딸이 빗물이 튀자 걱정스레 물었다. “아빠, 비 맞았는데 어떡해?” 방사선에 관해 전에 해준 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내 우산을 접고 “봐, 괜찮지? 아빠 말은 될수록 비 맞지 말자는 거지, 당장 어찌 된다는 건 아냐”라고 말해주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방사선은 설명하기 쉽지 않은 낯선 위험(리스크)이다. 딸은 방사선에 노출되면 바로 위해가 나타날 것처럼 반응했던 것이다. 낯설기는 방사선의 영향을 한창 학습중인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언론들은 방사선의 종류·성질·영향에 관해 전문가 견해를 담아 자주 보도한다. 미국 ‘사회적 책임 의사회’(PSR)는 미국민을 위해 자세한 설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래도 알쏭달쏭하다. 국내 원자력계 학자들은 기준선량과 비교해 지금 수준은 무해함을 강조했지만, 그들의 전문가 그룹엔 정작 공중보건 의학자나 방사선 생물학자는 빠지기 일쑤다. 낯선 위험에 민감한 사람들은 정말 안전한지 따지고 따지기 마련인데 듣고 싶은 얘기는 다 들리지 않는다. 원자력계 학자들이 빠뜨린 얘기는 다른 데서 들려온다. 미국 학계(2005)와 유럽 학계(2010) 보고서에서, 과학저널 <네이처>에서, 예방의학자들의 얘기에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방사선량이란 없다’는 널리 통용되는 이론이 소개된다.

낮은 수준(저선량)의 방사선이 끼치는 영향은 대체로 몇 년, 몇 십년 뒤에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질병이 생겨도 방사선 탓인지 다른 원인 탓인지 확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그 위험은 확률적 영향으로 다뤄진다. “저선량 방사선의 영향에 대해 우리는 정말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미국 방사선학자의 고백도 들린다.

확률적 영향은 체감하기 어렵다. 오늘 내가 진단용 엑스선을 쪼였다 해서 나중에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10만명이 엑스선을 쪼였다면? 남녀노소 100만명, 1000만명이 엑스선 일정량을 쪼였다면? 널리 알려진 이론모형(BEIR)에선 방사선량에 비례해 인구집단에서 일정 비율의 암 유발 영향이 나타난다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지금처럼 매우 낮은 방사선에선 비례하는 추가 위험도 매우 낮으니 걱정이야 줄겠지만, 공중보건에선 주시해야 하는 사안이 된다. 개인과 공중 건강에서 확률적 영향은 다른 문제다.

방사선 위험은 한두 차례 비로 끝나지 않는다. 자연방사선이건 생활방사선이건 원전방사선이건 모든 방사선은 공포나 방심과 무관하게 담담하게 날아온다. 충분히 피할 도리도 없다. 식품과 환경은 두고두고 큰 걱정거리다. 생활·의료방사선을 포함해 국민 전체가 받는 방사선 총량을 줄이려는 총량 관리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낯선 위험은 적절한 생활안전 수칙으로 대응하는 익숙한 위험이 될 수 있다.

적어도 기준 이하 방사선은 안전하다는 식의 주장이 과학의 이름으로 남발돼선 안 된다. 수많은 기초연구 결과와도 다르다. 공포가 방사능비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우를 낳을 수 있듯이, 기준 이하에선 무해하다는 주장은 방사선 오남용과 방심을 조장할 수 있다. 어떤 정치인은 ‘방사능 불안감을 조성하는 불순세력이 있다’는 말도 했다. 지금 필요한 건 낯선 두려움에 어떤 이념이 숨었는지 해부하겠다는 정치적 호기심이 아니라 낯선 위험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소통, 그리고 공중보건의 현실 대처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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