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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온라인 지식공유, 과학에서도 / 오철우

등록 2011-07-03 19:44수정 2011-07-03 22:42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네이처>도 블로그를
운영하는 온라인 시대
공개저널이 늘면서
평가도 엇갈린다
월드와이드웹은 대중 미디어의 생태계만 바꿔온 게 아니다. 각고의 연구로 얻은 결과가 논문으로 태어나고 그 옥동자가 마침내 지식의 시장에 출판되는 과학 유통 체제에도 적잖은 변화가 지금 일고 있다. 세계 과학논문의 10% 안팎이 이제 종이 없이 온라인에 공개출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독료를 내지 않고 누구나 웹에 접속해 논문을 볼 수 있다. 이른바 공개접근(OA) 방식의 학술저널 출판이다.

웹이 퍼지면서 1990년대 말부터 소수 과학자들은 공개와 공유의 지식 확산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비싼 구독료 정책을 취하는 수많은 학술저널에 의존하다 보니 논문을 자유롭게 읽을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해보자는 디지털 출판 운동이었다. 해럴드 바머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전 원장을 비롯해 이들은 지난 2000년 “국민 세금으로 연구한 연구물의 지식과 정보를 납세자가 다시 구독료를 내고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며 과학공공도서관(PLoS·플로스) 재단을 세웠다.

뜻 좋은 소수의 운동처럼 보였다. 그러나 종이저널들을 움찔하게 할 만했다. 미국 국립보건원 같은 공공기관과 여러 저널이 공개접근 정책을 취하면서 조금씩 관심이 넓어졌다. 2003년부터 플로스는 번듯한 공개저널을 잇따라 창간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재정과 인식 부족으로 회의론도 만만찮았다.

최근 조사 결과는 공개저널 운동에 다시 청신호를 비춰주었다. 공개저널인 <플로스 원> 이달치에 실린 한 조사연구를 보면, 전문가 심사를 거쳐 온라인에 공개출판되는 학술논문은 2009년 19만편을 넘겨 10년 전보다 10배 늘었다. 전체의 7.7%다. 지난해 4769종의 저널이 발간됐다. 이는 온라인 저널이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유행 좇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보수적인 학술 출판도 온라인의 비슷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발견의 희열을 담은 편지의 왕래에서 발전하여, 19세기 이래 심사·출판 제도를 다지며 태어난 전통의 과학저널들은 과연 온라인 시대에 어떤 변화를 겪을까?

사실 전통 저널들도 많은 변신을 꾀했다. 1869년 창간한 <네이처> 같은 저널도 이젠 블로그를 운영하는 웹 감각을 갖췄고,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라는 거대 학술단체의 블로그들은 직접 뉴스와 비평을 전한다. 학술 웹에서 댓글을 보는 일도 이젠 익숙하다. 논문을 무료로 공개하는 일도 늘었다.

공개출판은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다. 그래서 과학계에선 논란도 있고 평가도 엇갈린다. 공개저널이 늘면 도서관이나 독자는 구독료를 아껴 좋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공개저널은 심사·출판 비용을 논문 저자들이 내는 투고료로 충당한다. 그러니 연구자는 지원받을 연구비에 미리 투고료를 배정받아야 하고, 가난한 연구자한텐 논문 투고를 지원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또 종이 분량의 제한 없이 출판할 수 있는 공개저널이 우후죽순 늘면 질 낮은 논문 발표도 더 늘고 투고료의 상업성 같은 문제도 생길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해 미국 의회는 공개접근 정책을 두고 청문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문제는 사실 저자, 독자, 도서관, 정부, 연구기관 등 여러 관계의 이해를 조정하는 문제다. 과학의 건강한 진보가 목표라면 종이와 디지털은 도구의 문제다. 얼마 전 미국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같은 쟁쟁한 연구기관이 뭉쳐 공개접근의 생명의학 저널을 내년에 창간하겠다고 발표했다. 과학계에서 제법 화제가 될 것 같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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