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덕룡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 인터뷰
남북관계 투트랙 진행 바람직
민간협력으로 대화 계기 마련
정치·군사해법 찾는데도 도움 김덕룡(사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의 사무실은 서울 서초동 법원 인근의 오퓨런스빌딩 14층 한곳을 빌려 쓰고 있었다. 지난 12일 광복절 연휴를 앞둔 금요일 오후, 휴가철이었건만 이곳 일대는 차들로 꽉 막혔다. 어렵사리 시간을 쪼개 만든 자리인데 조바심이 났다. 인터뷰는 애초 오전에 잡혔다가 시간을 내기 어려워 오후로 옮겼다. 그래도 여의치가 않았다. 부득불 몇가지만 묻기로 하고 나머진 서면으로 대신했다. 바쁜 김 의장을 붙잡고 얘기를 듣고자 한 계기는 9일 한겨레평화연구소가 주관해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학술문화 정책토론회였다. 이 토론회는 지난해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의 단절을 가져온 5·24 조처로 인해 남북의 문화학술 교류가 엉뚱하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준비된 것이다. 그러나 통일부의 입김인지 아니면 눈치보기 때문인지 추진이 쉽지 않았다. 민화협이 토론회를 떠맡아 주최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결실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침 민화협 주도의 대북 식량지원이 성과를 보고 있고 8·15 경축사를 앞둔 만큼 두루 견해를 들었다. 김 의장은 이 정부의 기조와는 달리 남북간의 ‘더 많은 접촉을 통한 변화’를 강조했고, 대북정책을 다루는 부서와 ‘토론하고 있다’는 말로 우리 내부의 변화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음을 비쳤다. -지난 4월의 베이징 남북 비공개 접촉을 북한이 폭로하면서 남북관계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최근의 긍정적인 조짐으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북간에 본격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대화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것이기에 일방적인 요구와 희망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최근 우리 정부의 행보를 보면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대화의 재개에 좀더 유연성을 발휘하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만 북한 당국이 이에 호응에 나올 것인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내부 사정이 복잡하고, 북-중관계, 북-미관계 등과 연동되어 있어서 본격적인 대화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6자회담, 북-미회담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남북대화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평가절하하기보다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남북대화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부가 중요하게 내건 목표가 북핵문제 해결인 만큼, 남북 비핵화 회담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나가는 돌파구를 남북이 열어간다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 이를 계기로 만나면 피차 할 얘기는 많아지기 마련이어서 남북관계 전반으로 대화와 협력을 높여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어디서, 어떤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선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고, 이 문제에 북한의 보다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5·24조치 등이 벌써 1년이 지난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북한의 태도와 천안함에 남북관계를 강하게 결부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도 투트랙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비정치적 영역의 대화를 통해 신뢰와 협력을 높여가면서, 정치적·군사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인도적 지원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재개가 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5·24조처를 취한 나름의 명분과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장께서 지적하셨듯이 “비정치적 영역인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은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는 사업도 아니고, 오히려 북한을 변화의 길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야”라 할 수 있는데 학술문화 분야의 교류를 재개하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5·24조치가 발효되었던 시점은 무고한 우리의 젊은이들의 희생을 당한 상황이었기에 우리 정부가 정당하게 취할 수 있었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학술문화 사업과 인도적 지원 사업과 같은 경우도 당시는 우리 국민의 정서상 지속적인 추진이 힘든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술문화 사업과 인도적 지원 사업은 비정치적인 영역일 뿐만 아니라, 민족내부 통합을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인 만큼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비정치적 분야의 경우는 남북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이를 제도화하는 공동의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정부는 과거 정부의 포용정책을 비판하고 다른 접근방법을 보였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를 보면 결국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릇 모든 대북정책에는 그것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을 실패냐 성공이냐로 구분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난 정부의 정책이든, 현 정부의 정책이든, 북한을 변화시킨 측면도 있고, 변화시키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두 정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성과가 있는 부분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현 정부가 내세운 ‘원칙’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는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한차원 높은 남북관계로 이끌어 내는 것에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현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보다 실질적인 협력과 발전적 관계로 이끌어 내길 기대합니다. -지난 2008년 민화협 10돌을 맞아 당시 정세현 대표 상임의장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비유적으로 ‘남북관계의 전등이 꺼졌는데 민화협의 촛불까지 꺼질까’ 우려된다고 하셨는데, 민화협의 역할은 뭐라고 보십니까? =민화협은 보수와 진보를 비롯한 시민사회, 종교, 정당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각계각층의 합의를 바탕으로 보다 발전적 남북관계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민화협은 밖으로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안으로는 국민내부의 화해와 소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잇는 마지막 끈이요, 국민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여과해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민화협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통일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소통을 높여 나가는 것입니다. 보수의 목소리, 또는 진보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가 합의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최근 대북 인도지원에서 민화협이 적극적으로 나서 문을 열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민화협이 이 국면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통일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양측 당국과 민간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남북관계 발전과 내적 통합을 위해 민간의 독자적인 영역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남북당국간 대화가 중단되고, 오랫동안 관계가 경색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대화와 교류는 미약하나마 지속되어 왔습니다. 민간을 통한 지원과 협력을 통해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통일과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민간이 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이번 대북 밀가루 지원처럼, 남북 당국의 보다 전향적인 대화와 협력을 촉구하고, 민간의 힘을 모아 구체적인 실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현 시기 민화협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북한의 김기남 당비서 등 특사 조의 방문단이 왔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성사에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부 남은 기간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는데요. =아마도 최근의 남북관계가 워낙 경색되어 있으니 주변에서 그런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그 역할을 기꺼이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민화협 의장으로서 그동안의 활동에서 가장 뜻 깊게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인도적 지원의 물꼬를 텄다는 점을 우선 들고 싶습니다. 그 물꼬가 마침내 큰 강이 되어 흘렀으면 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민화협은 극단의 보수와 극단의 진보를 제외한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하는 조직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남북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생긴 남남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한 자리에 모아 수차례에 걸쳐 깊은 이야기를 때로는 공개적으로도 하고 아니면 다르게도 하면서 입장 차이를 좁혀왔습니다. 앞으로 더 발전시켜나가야겠지만 화해와 소통을 위한 민화협의 역할이 국민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걸 가장 큰 성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가, 정치인을 거쳐 어려운 시기에 민간부문의 통일부라 할 수 있는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을 맡아 왔는데 의장으로서 이것만은 꼭 해놓겠다는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숨고를 틈도 없이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좋은 전통으로 내려온 공생공영이라는 가치를 잠시 소홀한 것도 사실입니다. 공영은 기본적으로 화해와 소통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민화협은 탄생부터가 화해와 소통을 전제로 하는 곳입니다. 민화협의 화해와 소통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남북문제를 비롯한 사회갈등이 사회발전의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떠나고 싶습니다. 김덕룡은 ‘YS의 분신’…2009년부터 민화협 맡아 6·3항쟁을 주도한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정치인 김영삼의 비서로 입문해 한때 ‘와이에스’의 분신으로 불렸다. 마침 인터뷰를 하러 간 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를 터뜨리는 바람에 엉뚱하게 불똥이 튀었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는 보좌진들의 표정엔 ‘이제 와서 뭘 어쩌자는 건지’라는 표정이 묻어났다. 그는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의장에 이어 2009년 3월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을 맡았다. 이 정부에서 보기 드문(?) 잘된 인사라는 평을 들었다. 우리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국민통합 특보라는 직책도 그렇고, 야당 정치인으로 한국 현대정치사의 굽이굽이를 경험하면서 쌓은 경륜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의 오랜 의정활동을 통해 보여온 남북관계와 주변정세에 대한 식견 등 그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오랜 인간관계를 들어 김 의장이 바람직한 남북관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속 협력 위한 남북학술문화진흥원 만들자”
민화협 토론회
5·24조처 따른 학술문화 단절
실질적인 제재효과·명분 없어 통일의 내적 동력 만들어낼
독자영역으로 발전시켜야 남북 학술문화 교류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혀졌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까? 5·24 조처 1년이 지나면서 인도적 지원사업에도 숨통이 트이고, 경협 관련해서도 부분적이나마 변화가 보이고 있다. 이들의 어려움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덩달아 희생양이 된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은 그냥 방치되고 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제3차 정책토론회의 주제를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으로 잡은 이유다.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이 토론회에서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 현황과 추진 방향’을 주제로 발표한 전영선 건국대 교수(통일인문학연구소)는 “학술문화 분야의 단절은 정치나 경제 분야와 달리 실질적인 제재효과도 명분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들 분야의 사업을 중단한 것은 “제반 모든 분야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5·24 조처를 취하면서 정부는 예외 없이 모든 분야의 협력 단절을 강조했다. 그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문화협력 사업도 중단시킨 것인데 한마디로 들러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예외는 없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개성공단은 예외로 했다. 그런 점에서 전영선 교수는 정치·안보적인 남북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인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북학술문화진흥원의 운영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덕룡 민화협 의장은 인사말에서 “남북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부차적인 영역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통일의 내적 동력을 만들어 내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폭넓은 국민적 공감 속에서 진행되어 온 학술문화 교류사업의 경우 재개를 적극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엄종식 통일부 차관은 이날 축사에서 “정부는 원칙에 입각한 정책의 일관성을 견지해 정상적 남북관계를 정립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학술문화사업을 크게 학술분야, 문화재분야, 방송분야로 나눠 그동안의 진전 과정과 협력 중단에 따른 문제점, 앞으로의 사업방향 등을 점검했다. 또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개성 만월대 발굴사업, 북한 소장 고문헌 공동조사사업, 남북 방송협력사업을 추진해온 담당자들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이 가운데 북한 소장 고문헌 공동조사사업을 진행해온 이승철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의 사업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문헌자료 수집과 관리는 중앙집중화 원칙을 견지해 와서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종합대학의 과학도서관, 사회과학원, 각 박물관 등 국가기관에 전부 소장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다행이라고 지적했다. 1차적으로 인민대학습당에 소장된 1900년 이전의 약 5만~10만점 고문헌 자료를 공동조사했으며 북쪽으로부터 디지털화된 자료를 넘겨받고 그에 상응하는 기자재 등을 북쪽에 지원할 방침이라고 전했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인민대학습 수장고에는 고려시대의 목판 인쇄본 ‘동인지문’ 등 희귀본이 수장돼 있다며, ‘직지심체요절’(직지)보다 138년이나 앞선 ‘증도가자(字)’라는 금속활자 인쇄본도 수장돼 있다고 밝혔다. ‘증도가’라는 책을 찍은 금속활자를 확인한다면 직지보다 100년 앞선 금속활자본이 있다는 것으로 “세계 문명사에서 큰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남북은 2007~2010년 4회에 걸쳐 만월대 서부 건축군 구역의 3분의 1가량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2010년 5월18일 4차 조사 종료 뒤 5·24 조처로 모든 사업이 중단됐다. 이 개성 고려궁성(만월대) 발굴사업을 보고한 한국고고학회 회장인 신경철 부산대 교수는 발굴사업이 중단된 현실을 이렇게 비유했다. “통조림 깡통을 따놓고 내버려두는 것보다 심각한 일이다.” 개성 만월대를 발굴하다 중지할 것이었다면 600여년 동안 지하에서 온전히 보존돼온 고려유적에 아예 손을 대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려유물은 유일무이하고, 중간에 방치해놨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남북간 고고학분야의 협력은 동북아 역사전쟁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신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평양 소재 고구려 고분 발굴에 참여했으며, 이는 동북공정 등에 정치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도 평양 소재 고구려 고분 발굴사업을 공개적으로만 2차례, 비공개적으로 계속해서 진행했다. 신 교수는 일본은 납치문제 등으로 우리보다 훨씬 먼저 더 포괄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음에도 고분 발굴 등 문화협력 사업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민간협력으로 대화 계기 마련
정치·군사해법 찾는데도 도움 김덕룡(사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의 사무실은 서울 서초동 법원 인근의 오퓨런스빌딩 14층 한곳을 빌려 쓰고 있었다. 지난 12일 광복절 연휴를 앞둔 금요일 오후, 휴가철이었건만 이곳 일대는 차들로 꽉 막혔다. 어렵사리 시간을 쪼개 만든 자리인데 조바심이 났다. 인터뷰는 애초 오전에 잡혔다가 시간을 내기 어려워 오후로 옮겼다. 그래도 여의치가 않았다. 부득불 몇가지만 묻기로 하고 나머진 서면으로 대신했다. 바쁜 김 의장을 붙잡고 얘기를 듣고자 한 계기는 9일 한겨레평화연구소가 주관해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학술문화 정책토론회였다. 이 토론회는 지난해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의 단절을 가져온 5·24 조처로 인해 남북의 문화학술 교류가 엉뚱하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준비된 것이다. 그러나 통일부의 입김인지 아니면 눈치보기 때문인지 추진이 쉽지 않았다. 민화협이 토론회를 떠맡아 주최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결실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침 민화협 주도의 대북 식량지원이 성과를 보고 있고 8·15 경축사를 앞둔 만큼 두루 견해를 들었다. 김 의장은 이 정부의 기조와는 달리 남북간의 ‘더 많은 접촉을 통한 변화’를 강조했고, 대북정책을 다루는 부서와 ‘토론하고 있다’는 말로 우리 내부의 변화에도 적극 관여하고 있음을 비쳤다. -지난 4월의 베이징 남북 비공개 접촉을 북한이 폭로하면서 남북관계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최근의 긍정적인 조짐으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북간에 본격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대화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것이기에 일방적인 요구와 희망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최근 우리 정부의 행보를 보면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대화의 재개에 좀더 유연성을 발휘하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만 북한 당국이 이에 호응에 나올 것인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내부 사정이 복잡하고, 북-중관계, 북-미관계 등과 연동되어 있어서 본격적인 대화는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6자회담, 북-미회담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남북대화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6자회담 개최를 위한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평가절하하기보다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남북대화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부가 중요하게 내건 목표가 북핵문제 해결인 만큼, 남북 비핵화 회담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풀어나가는 돌파구를 남북이 열어간다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 이를 계기로 만나면 피차 할 얘기는 많아지기 마련이어서 남북관계 전반으로 대화와 협력을 높여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어디서, 어떤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선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고, 이 문제에 북한의 보다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5·24조치 등이 벌써 1년이 지난 상황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북한의 태도와 천안함에 남북관계를 강하게 결부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도 투트랙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비정치적 영역의 대화를 통해 신뢰와 협력을 높여가면서, 정치적·군사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인도적 지원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조금씩 재개가 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5·24조처를 취한 나름의 명분과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장께서 지적하셨듯이 “비정치적 영역인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은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는 사업도 아니고, 오히려 북한을 변화의 길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야”라 할 수 있는데 학술문화 분야의 교류를 재개하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5·24조치가 발효되었던 시점은 무고한 우리의 젊은이들의 희생을 당한 상황이었기에 우리 정부가 정당하게 취할 수 있었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학술문화 사업과 인도적 지원 사업과 같은 경우도 당시는 우리 국민의 정서상 지속적인 추진이 힘든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술문화 사업과 인도적 지원 사업은 비정치적인 영역일 뿐만 아니라, 민족내부 통합을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인 만큼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비정치적 분야의 경우는 남북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이를 제도화하는 공동의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정부는 과거 정부의 포용정책을 비판하고 다른 접근방법을 보였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를 보면 결국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릇 모든 대북정책에는 그것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을 실패냐 성공이냐로 구분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난 정부의 정책이든, 현 정부의 정책이든, 북한을 변화시킨 측면도 있고, 변화시키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두 정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성과가 있는 부분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현 정부가 내세운 ‘원칙’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는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한차원 높은 남북관계로 이끌어 내는 것에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현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보다 실질적인 협력과 발전적 관계로 이끌어 내길 기대합니다. -지난 2008년 민화협 10돌을 맞아 당시 정세현 대표 상임의장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비유적으로 ‘남북관계의 전등이 꺼졌는데 민화협의 촛불까지 꺼질까’ 우려된다고 하셨는데, 민화협의 역할은 뭐라고 보십니까? =민화협은 보수와 진보를 비롯한 시민사회, 종교, 정당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각계각층의 합의를 바탕으로 보다 발전적 남북관계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민화협은 밖으로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안으로는 국민내부의 화해와 소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잇는 마지막 끈이요, 국민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여과해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민화협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통일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소통을 높여 나가는 것입니다. 보수의 목소리, 또는 진보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가 합의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최근 대북 인도지원에서 민화협이 적극적으로 나서 문을 열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민화협이 이 국면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통일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양측 당국과 민간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남북관계 발전과 내적 통합을 위해 민간의 독자적인 영역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남북당국간 대화가 중단되고, 오랫동안 관계가 경색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대화와 교류는 미약하나마 지속되어 왔습니다. 민간을 통한 지원과 협력을 통해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통일과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민간이 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이번 대북 밀가루 지원처럼, 남북 당국의 보다 전향적인 대화와 협력을 촉구하고, 민간의 힘을 모아 구체적인 실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현 시기 민화협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북한의 김기남 당비서 등 특사 조의 방문단이 왔을 때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성사에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부 남은 기간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는데요. =아마도 최근의 남북관계가 워낙 경색되어 있으니 주변에서 그런 기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그 역할을 기꺼이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민화협 의장으로서 그동안의 활동에서 가장 뜻 깊게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인도적 지원의 물꼬를 텄다는 점을 우선 들고 싶습니다. 그 물꼬가 마침내 큰 강이 되어 흘렀으면 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민화협은 극단의 보수와 극단의 진보를 제외한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하는 조직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남북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생긴 남남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한 자리에 모아 수차례에 걸쳐 깊은 이야기를 때로는 공개적으로도 하고 아니면 다르게도 하면서 입장 차이를 좁혀왔습니다. 앞으로 더 발전시켜나가야겠지만 화해와 소통을 위한 민화협의 역할이 국민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걸 가장 큰 성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가, 정치인을 거쳐 어려운 시기에 민간부문의 통일부라 할 수 있는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을 맡아 왔는데 의장으로서 이것만은 꼭 해놓겠다는 게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숨고를 틈도 없이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좋은 전통으로 내려온 공생공영이라는 가치를 잠시 소홀한 것도 사실입니다. 공영은 기본적으로 화해와 소통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민화협은 탄생부터가 화해와 소통을 전제로 하는 곳입니다. 민화협의 화해와 소통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남북문제를 비롯한 사회갈등이 사회발전의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떠나고 싶습니다. 김덕룡은 ‘YS의 분신’…2009년부터 민화협 맡아 6·3항쟁을 주도한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정치인 김영삼의 비서로 입문해 한때 ‘와이에스’의 분신으로 불렸다. 마침 인터뷰를 하러 간 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를 터뜨리는 바람에 엉뚱하게 불똥이 튀었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는 보좌진들의 표정엔 ‘이제 와서 뭘 어쩌자는 건지’라는 표정이 묻어났다. 그는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의장에 이어 2009년 3월 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을 맡았다. 이 정부에서 보기 드문(?) 잘된 인사라는 평을 들었다. 우리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국민통합 특보라는 직책도 그렇고, 야당 정치인으로 한국 현대정치사의 굽이굽이를 경험하면서 쌓은 경륜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의 오랜 의정활동을 통해 보여온 남북관계와 주변정세에 대한 식견 등 그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오랜 인간관계를 들어 김 의장이 바람직한 남북관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속 협력 위한 남북학술문화진흥원 만들자”
지난해 5·24 조처로 단절된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의 재개를 위해 마련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의 3차 정책토론회가 지난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실질적인 제재효과·명분 없어 통일의 내적 동력 만들어낼
독자영역으로 발전시켜야 남북 학술문화 교류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혀졌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까? 5·24 조처 1년이 지나면서 인도적 지원사업에도 숨통이 트이고, 경협 관련해서도 부분적이나마 변화가 보이고 있다. 이들의 어려움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덩달아 희생양이 된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은 그냥 방치되고 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제3차 정책토론회의 주제를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으로 잡은 이유다.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이 토론회에서 ‘남북 학술문화 협력사업 현황과 추진 방향’을 주제로 발표한 전영선 건국대 교수(통일인문학연구소)는 “학술문화 분야의 단절은 정치나 경제 분야와 달리 실질적인 제재효과도 명분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들 분야의 사업을 중단한 것은 “제반 모든 분야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5·24 조처를 취하면서 정부는 예외 없이 모든 분야의 협력 단절을 강조했다. 그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문화협력 사업도 중단시킨 것인데 한마디로 들러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예외는 없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개성공단은 예외로 했다. 그런 점에서 전영선 교수는 정치·안보적인 남북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적인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북학술문화진흥원의 운영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덕룡 민화협 의장은 인사말에서 “남북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부차적인 영역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남북관계의 발전과 통일의 내적 동력을 만들어 내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폭넓은 국민적 공감 속에서 진행되어 온 학술문화 교류사업의 경우 재개를 적극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엄종식 통일부 차관은 이날 축사에서 “정부는 원칙에 입각한 정책의 일관성을 견지해 정상적 남북관계를 정립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학술문화사업을 크게 학술분야, 문화재분야, 방송분야로 나눠 그동안의 진전 과정과 협력 중단에 따른 문제점, 앞으로의 사업방향 등을 점검했다. 또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과 개성 만월대 발굴사업, 북한 소장 고문헌 공동조사사업, 남북 방송협력사업을 추진해온 담당자들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이 가운데 북한 소장 고문헌 공동조사사업을 진행해온 이승철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의 사업 결과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문헌자료 수집과 관리는 중앙집중화 원칙을 견지해 와서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종합대학의 과학도서관, 사회과학원, 각 박물관 등 국가기관에 전부 소장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다행이라고 지적했다. 1차적으로 인민대학습당에 소장된 1900년 이전의 약 5만~10만점 고문헌 자료를 공동조사했으며 북쪽으로부터 디지털화된 자료를 넘겨받고 그에 상응하는 기자재 등을 북쪽에 지원할 방침이라고 전했으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인민대학습 수장고에는 고려시대의 목판 인쇄본 ‘동인지문’ 등 희귀본이 수장돼 있다며, ‘직지심체요절’(직지)보다 138년이나 앞선 ‘증도가자(字)’라는 금속활자 인쇄본도 수장돼 있다고 밝혔다. ‘증도가’라는 책을 찍은 금속활자를 확인한다면 직지보다 100년 앞선 금속활자본이 있다는 것으로 “세계 문명사에서 큰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남북은 2007~2010년 4회에 걸쳐 만월대 서부 건축군 구역의 3분의 1가량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2010년 5월18일 4차 조사 종료 뒤 5·24 조처로 모든 사업이 중단됐다. 이 개성 고려궁성(만월대) 발굴사업을 보고한 한국고고학회 회장인 신경철 부산대 교수는 발굴사업이 중단된 현실을 이렇게 비유했다. “통조림 깡통을 따놓고 내버려두는 것보다 심각한 일이다.” 개성 만월대를 발굴하다 중지할 것이었다면 600여년 동안 지하에서 온전히 보존돼온 고려유적에 아예 손을 대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려유물은 유일무이하고, 중간에 방치해놨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남북간 고고학분야의 협력은 동북아 역사전쟁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신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평양 소재 고구려 고분 발굴에 참여했으며, 이는 동북공정 등에 정치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도 평양 소재 고구려 고분 발굴사업을 공개적으로만 2차례, 비공개적으로 계속해서 진행했다. 신 교수는 일본은 납치문제 등으로 우리보다 훨씬 먼저 더 포괄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하고 있음에도 고분 발굴 등 문화협력 사업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연재싱크탱크 광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