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누가 이기느냐보다 진실이 중요하다
국방부도 법정검증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국방부도 법정검증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던 지난 22일, 사람들의 기억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천안함 침몰 사고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선 천안함 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을 지낸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법 위반 사건의 첫 공판이 열렸다. 기소된 지 1년 만이다.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에 피격됐다는 합조단 조사 결과에 대해 “사고 원인은 좌초와 충돌”이라며 조작·은폐 의혹을 제기하자 국방장관 등이 신씨를 고소·고발한 사건이다.
첫 공판을 마친 신씨가 온라인에 소감을 올렸다. 피고인이면서도 여유 있었다. “합조단과 군부 최고위층에서 고소·고발해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며 “무엇보다도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을 증인석에 세울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도 했다. 변호인단에 물어보니, 30여명의 증인 신청과 여러 감정·검증 신청을 해두어 “사건의 진실을 정면에서 다룰 계획”이라 하니 재판은 만만찮아 보인다.
법정 공방은 해를 넘길 테고 지루하게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주목받아야 할 재판이다. 먼저, 합조단 조사 결과 발표 뒤에도 여전히 남은 의문을 공적 무대에서 얘기할 거의 유일한 공론장이기 때문이다. 정치 무대가 아니라 법정이라는 점도 의미 있다. 이상적으론 법정에서 누구나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증거능력을 다툴 터이니 쟁점은 좀더 공정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과학 논쟁은 다시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사실 이 점은 경계해야 한다. 현실은 늘 복잡한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는데, 눈앞의 과학적 분석에만 매달리다 보면 맥락 잃은 분석과 판단에 휩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기술학자 실라 재서너프는 <법정에 선 과학>에서, 과학이 분쟁을 단번에 풀어주리라는 지나친 믿음은 오히려 분쟁을 합리적으로 푸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분석 데이터와 확률 통계에도 인간의 가치·해석이 개입하면 분쟁은 꼬리를 물며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교신기록, 항해기록, 처리과정 같은 인간 요소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래도 과학은 이미 논쟁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합조단 보고서 <천안함 피격사건>의 대부분이 과학적 분석과 시뮬레이션의 결과이고, 선체와 어뢰에서 수거한 흡착물질의 분석 데이터가 일치한다는 점은 어뢰 수중폭발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됐다. 이 증거물이 논쟁 대상이 됐다. 흡착물질이 부식으로 생긴 수산화알루미늄인지 폭발로 생긴 산화알루미늄인지, 폭발실험에서 얻은 흡착물질의 성분과 일치하는지에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폭발 뒤에 남은 ‘1번’ 표시나 프로펠러의 휜 방향에도 다른 해석이 제기됐다.
과학자들끼리 과학적 증거력을 다투는 일은 민망하지만 피할 도리가 없다. 다행히 이런 다툼을 푸는 좋은 제도 경험이 과학계에 있다. 연구진실성 조사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규정을 보면, 연구부정 행위와 더불어 축소·과장·왜곡 같은 부적절 행위가 의심될 때엔 조사에 나설 수 있다. 조사위는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 구성하되 객관성을 갖춘 외부 인사도 포함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수긍할 수준으로 전문·객관성을 발전시킨 국내외 과학계의 경험은 법정의 과학 논쟁에 좋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진실의 실체는 눈앞에 없고 단서를 좇아 조각을 맞춰야 한다면, 조사 과정이 진실했고 믿을만한지가 현실적 검증 포인트가 된다. 사실 명예훼손을 주장하는 합조단의 신뢰를 높일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니 국방부도 법정 검증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정말 알고 싶은 건 재판에서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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