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상식이 비상식을 이겨야 한다”는 말
정도로는 해소할 수 없는 궁금증이 있다
정도로는 해소할 수 없는 궁금증이 있다
안철수 교수의 행보는 매우 절제돼 있다. 결코 덤벙대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으면 나서되 지나치게 행동하지 않는다. 서울시장 선거전 막판에 박원순 후보를 선거사무실로 홀로 찾아가 편지 한 통을 건넨 것이 대표적이다. ‘이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고 요란스레 떠들지 않으면서도 지원 효과는 다 얻었다.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로 서울대 보직에서 물러난 것도 좋은 예다. 그는 경기도가 돈을 대는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자리는 물러나면서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직이나 교수 직위는 유지했다. 서울시장 선거일 전에 사직을 결심하고서도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선거 후에 물러났다. 한나라당 쪽의 옹졸한 태도와 대비됐으며, 안 교수는 결국 자기 손으로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는 큰 타격을 줬다.
두달 전 50%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5% 지지율밖에 안 되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그는 오히려 대선주자급으로 하루아침에 떠올랐다. 이런 그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프로보다 더 프로”(김부겸 민주당 의원)라는 평이 나온다.
그러나 그의 이런 행동이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이력 등으로 볼 때 그의 삶의 방식과 문법이 기존 정치인들이나 일반인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의사라는 안정적인 길을 택하기보다는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사라는 새로운 길을 택하는 등 자기가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것을 비우면서 살아왔다.
그의 진정성과 열정이 대중의 공감을 얻으면서 안 교수는 새로운 정치를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본인이 원하든 않든 그는 이제 일개 대학교수가 아니라 여당 후보에 맞설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도 부상했다.
그래서일까. ‘안철수 현상’에 대한 고민은 여권보다 야권이 더 큰 것 같다. 여권은 대세론이 비록 무너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박근혜라는 기댈 언덕이 있기 때문에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하는 반면에 야권은 파장을 흡수할 만한 완충지대가 없다. 안 교수가 등장한 이후 기존의 야당 대선주자들의 위상은 크게 약해지고, 기존 정당들은 안풍에 힘없이 떠밀려가는 분위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기존 주자들의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또 노회찬·심상정 전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 진보세력 차세대 주자들의 존재감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그 원인이야 물론 기존의 야권 주자들 본인들에게 있다. 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지지율이 모두 다 합하더라도 박 전 대표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다. 현 정권 심판을 바라는 많은 대중의 희망을 충족할 수 없기에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안 교수가 장차 야권의 대체 주자가 과연 될 수 있고, 그 이후 여권의 일제 공격에도 흔들림이 없는 정치근육을 가졌느냐는 데에 대해 이러저러한 의문과 고민이 나오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세계사적인 문명 전환기에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정치철학과 신념체계를 가졌는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돼 있는 노동문제를 어떻게 풀지 등에 궁금해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상식이 비상식을 이겨야 한다”거나 “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는 정도의 인식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안 교수가 새로운 당을 만들건 아니면 통합야당에 합류하건 간에 정치를 계속해서 국민을 대표할 생각이라면 그는 먼저 이런 문제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정치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phillkim@hani.co.kr
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안 교수가 새로운 당을 만들건 아니면 통합야당에 합류하건 간에 정치를 계속해서 국민을 대표할 생각이라면 그는 먼저 이런 문제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정치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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