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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삼포’ 앞의 곡괭이 / 조영훈

등록 2011-11-14 19:16수정 2012-01-31 21:40

조영훈 청년유니온 조합원
조영훈 청년유니온 조합원
연애·결혼·출산 포기하는 이들 가슴에
코믹하지만 잔인한 곡괭이가 내리꽂혔다
구도에 대한 갈애를 이기지 못한 제자, 스승에게 묻는다.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돌아오는 스승의 일갈. “뜰 앞의 잣나무!” 이 엉뚱한 대답으로 스승은 제자의 깨달음에 대한 집착을 파훼한다. 말하자면 ‘깨달음이란 무엇이냐’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이처럼 범속한 이들의 상식을 저 멀리 우주 밖으로 날려버리는 문답으로 소통과 해갈의 문을 여는 대화를 선문답이라 한다.

며칠 전 진리와는 무관한 이 풍진 세상에서도 ‘선문답 같은 것’이 청년들의 가슴을 흔들어댔다. 이름하여 ‘60+20 프로젝트’. 60대 퇴직자 1명과 20~30대 젊은 구직자 2명을 한 조로 해서 모두 10개 조로 팀을 짜 해외 탄광지대에 파견하는, 이른바 ‘해외석탄사업단’이 11월 발족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식경제부 최중경 장관의 직접 지시 사항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선승 격인 최중경 장관이 퇴직자 어르신들과 백수 청년들의 번뇌를 곡괭이 한 자루에 묶어 해외 탄광지대로 날려버리겠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일반상식과 사회통념을 저 멀리 우주, 아니 해외 탄광지대로 날려버리는 이 파격적인 발상은 그 과격성과 엉뚱함에서 선문답에서의 고승의 한 줄 호통을 빼닮았다. 소식을 접한 사람을 잠시나마 깊은 충격과 전율에 빠뜨린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질문이 아니라 대답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점, 그리고 소통과 해갈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닫게 한다는 것 정도.

그나마 정부의 이번 프로젝트가 기여한 바가 있다면, 아마도 살아내고 있는 현재와 예측되는 미래가 결코 만만치 않아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큰(쓴) 웃음을 안겨줬다는 것 정도일 게다. 도대체 또 삽, 아니 이번엔 ‘유사 삽’이라 할 수 있는 곡괭이를 내미는 그 토건 도구에 대한 일관된 집착도 그렇거니와, 이 프로젝트로 무엇을 바라 마지않기에 장관이 직접 발 벗고 나섰는지 역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대체 왜?

글쎄, 어리석은 중생 주제에 감히 추측해본다면, 어학연수조차 가기 힘든 어려운 처지의 젊은이들에게 외국 물, 아니 외국 석탄 한번 맛보게 해주려는 것? 21세기형 글로벌 인재를 해외에 파견해 대한민국 곡괭이질 역량을 만방에 떨치려는 것? 하여 주요 20개국(G20) 국가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겠다는 심산? 아니면 철부지 20대와 멘토(!) 60대가 살을 맞대고 곡괭이를 휘두르고 서로의 얼굴에 묻은 갱내 분진을 닦아주며 세대간 화합이라도 이룩하자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맙소사, 진정 청년 구직자들의 취업난 해소?

현 정부 아래서 살아가며 어디 이해 안 되는 것들이 한두가지겠냐마는, ‘청년 구직자’를 콕 집어 해외 탄광으로 보내(버리)겠다는 그들의 심사가 궁금하다 못해 괘씸하다. 초·중·고·대학 16년 동안 ‘좋은 직장 얻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 들으며 책상머리에 몸뚱이를 구겨넣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제일 먼저 듣게 되는 말은 높으신 분들의 ‘눈을 낮춰야 한다’이다. 정부가 너무 독한 건지 청년들이 너무 순한 건지, 아무튼 청년들이 그 눈이란 걸 낮추는 데 드는 시간은 대체로 6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해서, 월 급여 100여만원을 받고 고시원이나 반지하방 월세로 40여만원을 내느라 저축을 전혀 할 수 없는 ‘한달살이’ 청년들. 돈이 없어 연애·결혼·출산 다 포기하고 산다는 ‘삼포세대’ 젊은이들. 월급은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고, 사랑 같은 건 사치이며, 아프지 않는 게 유일한 재테크라고 자조하는 이들. 이들의 가슴에 코믹하지만 잔인한 곡괭이가 내리꽂혔다.

‘삼포 앞의 곡괭이’…. 이 화두를 받아들고 내가 깨달은 것은 현 정부가 젊은 세대와 소통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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