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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행복의 구체성과 선택 / 양선아

등록 2012-01-01 20:39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올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선택지를 가졌다
한 선배가 곧 칠레로 떠난다. 칠레의 빈부격차를 공부하기 위해서란다. 12년 동안의 <한겨레>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가족 모두 간다. 며칠 전 그를 만났다.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물었다. 그는 “더 행복하고, 더 재밌게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국제부 생활을 오래 한 그는 더 늦기 전에 칠레를 가고 싶다 했다.

멀대같이 키가 큰 그는 옥탑방에 살면서 스페인 음악을 즐겨 들었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나이에 비해 천진난만하기만 한 그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다. 또 한 명의 노총각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내 친구를 소개해줬고, 7년 전 그들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선배는 결혼식에서 무릎을 꿇고 갈라진 목소리로 <아름다운 구속>을 불렀다. 선배 조카들은 그들을 위해 랩도 하고 트로트 <어머나>를 불렀다. 결혼식장은 축제 분위기 그 자체였다. 하객들은 배를 움켜쥐며 웃었다. “재밌다” “얼쑤~” 감탄사가 쏟아졌다. 지루하고 식상하지 않았다. 결혼식이 끝난 뒤 “결혼식을 어떻게 그렇게 했냐?”고 물으니 그때도 그는 “재밌고 행복한 결혼식을 고민하다 아내와 상의해 기획했다”고 답했다.

재건축 아파트만을 돌아다니며 살지만 부부는 여전히 행복하다. 5년 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직장, 집, 아이 학교 등 걱정되는 것이 많지만, 부부는 용기를 내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더 행복하고 더 재밌게 살기 위해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행복은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하얀 침대시트’를 깔고 침실 조명을 아늑하고 부드러운 ‘백열등’으로 바꾸니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이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얻기 위해 월급 전부를 포기하고, 아내로부터 하얀 침대시트를 얻어냈다.

주변을 둘러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항상 스스로에게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그 물음을 통해 구체적인 답을 얻고 실천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를까’에 집착하지 않는다. 행복을 얻기 위해 기존의 것을 버리고 용기있게 선택한다.

새해를 맞아 자신의 행복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더 행복해지고 더 재밌는 삶을 위해 올 한해 무엇을 할지 적어보는 거다.

행복을 좀더 구체화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회가, 국가 정책이 바뀌어야만 가능한 것이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가능한 것도 있다. 거대한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제한돼 있다.

그러나 올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선택지를 가졌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방향성을 움켜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 입안자이고 정책을 집행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한지 알려야 하고, 행복을 위한 정책을 요구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를 보면 한국인들은 불행하다. 34개 회원국 중 26위다. 자살률은 10만명당 21.5명으로 오이시디 평균(11.7명)의 두배다. 또 한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어린이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오이시디 회원국 중 꼴찌였다. 잘사는 나라가 아닌, 더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지난 4년 우리는 충분히 불행했다.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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