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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포기가 아니라 거부한 것이다 / 임형찬

등록 2012-01-16 19:35수정 2012-01-31 21:41

임형찬 회사원
임형찬 회사원
2030의 ‘삼포’는
물질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실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을 계획하면서 부동산 정보를 뒤진 적이 있었다. 집을 구입하는 것은 지금 나이에 꿈도 못 꿀 일이고, 괜찮은 가격의 월세나 전세라도 구하면 그나마 행운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계획마저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증금 몇천만원은 기본이요, 통장에는 찍혀 본 적도 없는 억 단위 매물이 모니터를 가득 채울 때, 자연스럽게 한숨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인생에 그렇게 긴 한숨을 쉬어본 일이 있었던가? 아무리 봐도 당분간 자력으로 해결할 수준은 아니었다. 어떤 개그맨 말처럼 숨만 쉬고 살 수 있을 때나 가능할 이야기다. 적어도 집은 있어야 여자를 데려올 수 있다는 주변의 말을 떠올리니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사라졌다.

요즘 2030세대들이 독립을 위해 가져야 할 스펙은 과거보다 강화되었다. 부모 세대는 맨몸으로 월세를 얻어 시작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요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결혼을 하려면 전셋집 하나라도 잡아야 하고, 연애를 하려면 꽤나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맨몸으로 결혼해 애를 키우자고 하면 예비 장모에게 뺨부터 맞을지 모른다. 거기다 서른을 넘기니 요구조건은 급격히 증가했다. 벌이는 변함이 없고 등록금 대출 갚기도 바쁜데, 집에서는 결혼을 하라고 아우성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지인들에게 투자한 축의금을 회수할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정년이 다가올수록 결혼 압력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많으리라! 그나마 애인이 없으면 다행이다. 애초부터 연애는 변명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들도 부모 세대가 겪었던 청년 시절처럼 계획을 세운다. 학력이 높아져서인지 몰라도 그 계획이란 것도 한층 구체적이다. 그런데 9시 뉴스만 봐도 물가와 부동산 가격, 사교육비 급증에 대한 이야기는 재방송처럼 매일 보도된다. 그래서 앞날을 예측해 보니 집을 사면 ‘하우스 푸어’가 될 것이고, 지금의 사교육비와 양육비를 생각하면 아스피린을 달아놓고 살 것 같다. 그런 와중에 가장 가까운 현안인 연애마저도 물질적 가치가 지배한 상황이다.

그래서 몇몇은 ‘당분간 계획 없다’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당분간 계획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연애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가난한 결혼은 부모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긴다. 출산을 하게 되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대입을 위한 경력 쌓기에 돌입하여야 한다. 그래서 서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물질적 가치에 삶을 맞추어 경제적 불행을 자초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삼포세대’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묻는다면 화려한 연애와 화려한 결혼, 그리고 양육 문제 때문에 불행해질 또다른 미래를 포기했다는 의미가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포기’는 물질적 가치를 거부하는 실리적 선택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청년이란 원래 가난한 것이 정상이다. 등록금도 대출하는 형편에 취직 후 저축을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반지하 월세도 비싸지만 자립해서 산다는 것은 위대한 독립을 상징하는 것이다. 결혼을 위한 주택 구입, 품위 유지를 위한 자가용, 화려한 결혼식은 애초부터 청년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2030세대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가난한 연애와 가난한 결혼의 시작, 그리고 자녀 양육의 대안적 방법들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포세대라는 말은 ‘포기’의 의미가 아니다. 최근 2030세대의 정치 참여 열풍은 가난한 독립을 위한 대안의 요구이자 ‘포기’하지 않았다는 강렬한 열망의 표현인 것이다.

임형찬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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