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기획
일주일치 신문 가운데 유일하게 이틀 동안 봐야 하는 신문이 있다. 토요일치다. 대다수 일간지가 일요일에는 신문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일요일 휴간제가 뿌리 내린 것은 한국 신문사 전체로 봤을 때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신문인 <매일신문>이 나온 이래 신문 발행 체제의 기본은 주7일 발행이었다. 1924년 월남 이상재 선생이 사장으로 있던 시절의 <조선일보>는 최초로 하루에 석간 4면, 조간 2면을 동시에 내는 조석간제를 채택해 이를 업계에 유행시키기도 했다. 1년 내내 휴일 없이 조석간으로 신문을 발행해야 했던 신문노동자를 과로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이었다. 군사정권은 1962년 7월31일 발표한 ‘언론정책 시행기준’에서 신문이 조간 또는 석간을 선택해 하루 한번만 신문을 내도록 하는 단간제와 주6회 발행을 의무화했다. 신문이 쉬는 날은 지금처럼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이었다.(석간은 일요일치)
주7회 발행 관행은 1987년 민주화 바람과 함께 되살아났다. 언론 민주화의 영향으로 언론사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1989년 7월3일부터 <한국일보>가 월요판을 부활시켰다. 이 신문은 1991년 12월16일 조석간제 발행까지 되살리며 신문업계를 무한경쟁 시대로 이끌었다.
주7일 발행과 조석간 복간제는 신속한 정보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하지만 신문 제작 여건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각 신문이 양적 경쟁에 뛰어들다보니 지면의 질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김주언 언론광장 감사는 “당시만 해도 일요일에는 외신을 빼면 기삿거리가 거의 없었다”며 “일요일치 신문은 시의성 없는 기사나 함량이 떨어지는 기사, 오락성 기사로 채우는 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1997년 12월초 찾아온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사태’는 신문업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혹독한 경제위기로 신문업계는 같은달 23일 자율적 감면을 결의했고, 1998년 7월4일부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아예 일요일치 신문을 휴간하기에 이른다. 일요일치 신문은 그 뒤 되살아나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신문은 양적 경쟁에서 벗어나 신문의 질을 우선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눈에 띄는 흐름은 섹션 및 주말판 지면의 등장이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주5일제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언론계는 주말판으로 불린 지면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002년 1월4일 동아일보가 먼저 매주 금요일 16면짜리 ‘위크엔드’(Weekend)라는 이름의 별도 섹션을 내보냈다. 이어 같은달 10일과 18일 <문화일보>와 <매일경제>는 각각 목요일치와 금요일치로 16면짜리 주말판 ‘휴’(休)와 ‘라이프 앤 컬처’를 들고나왔다.
주말판을 별도 섹션으로 묶어 발행하는 흐름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은 토일섹션이라는 이름으로 ‘와이?’(Why)와 ‘위클리 비즈’(Weekly BIZ)를, 중앙과 동아는 각각 ‘제이’(j)와 ‘오투’(O2)를 내고 있다. 한국이 ‘에이치’(H)라는 8면짜리 주말 에디션을 본지 안에 끼워넣는 형태로 발행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다. 내용 면에서도 기존 신문의 주말판은 평일치에 견줘 여행과 레저, 쇼핑, 생활정보 등 가벼운 뉴스를 주로 다룬다는 특징이 있다.
‘지적 만족’과 ‘깊이 있는 뉴스’를 열쇳말로 1면부터 24면까지 토요일치 신문 전체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한겨레> 토요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뉴스에 치중했던 지금까지의 신문 주말판과 분명 다른 셈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