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자유기고가
청년들을 옥죄는 ‘주인’들과의
싸움에서는 백번의 공감보다
한번의 승리가 더 값지다
싸움에서는 백번의 공감보다
한번의 승리가 더 값지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이반 속에서 젊은 세대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이들의 투표성향이 부각되면서 청년 학생들이 진보세력을 견인하는 주요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진보적인 가치나 노선에 원칙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는 판단은 아직 섣부르다. 오히려 젊은이들의 생각은 크게 보수화되었다. 과거 진보정치를 견인했던 이념적 학생운동이 쇠퇴하면서 청년들의 정치적 공론장에 대한 경험이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황이 바뀐다면 젊은이들의 보수적 투표성향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어쨌거나 청년들이 겪는 구체적인 문제들은 변함이 없다. 지난해에는 반값 등록금 운동, 서울대 법인화 투쟁 등에서 청년들의 요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성과는 미약했다. 이를테면 반값 등록금은 사학권력에 대한 통제와 전반적인 교육 공공성 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치권은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사학권력’과 ‘기업경영 논리’와 대결하는 더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고 시혜적인 태도로 등록금 이슈에 접근했다.
더 나쁜 것은 청년에 대한 공허한 ‘공감’의 제스처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겪는 구체적 문제들은 공감으로 해결될 수 없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멘토이자 서울대 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는 학생들이 점거농성을 벌인 서울대 법인화 문제에 대해 “소통의 핵심은 신뢰”라는 박근혜식 화법을 구사한 바 있다. 청년들의 구체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저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게 멘토들의 실상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청년들의 표심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가령 현재 진행중인 동국대 구조조정 문제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 당국의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연이어 퇴학과 무기정학 등의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비단 동국대만이 아니라 전국 사립대에서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대학 내에서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의 불이익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등록금을 아무리 강제로 인하시키더라도 진정한 학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학들은 장학금을 삭감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며 약자들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는 ‘꼼수’를 부릴 것이다. 따라서 정당들이 교육 현장에서의 외로운 싸움에 연대하지 않는다면 ‘반값 등록금’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주도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투표 독려 같은 현상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대다수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집단적인 결정을 통해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상실했다. 청년들이 ‘멘토’를 찾아다니며 <나꼼수>와 같은 정치예능 방송에 열광하는 현상 이면에는 이러한 체념의 태도가 놓여 있다. 여기에는 일부분 기성 정치세력의 책임이 있다. 청년에 대한 시혜적인 태도와 공감 어린 멘토의 역할 외의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청년 문제의 해법은 청년 자신들이 일터나 교육 현장과 같은 구체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스스로가 권리의 주체라는 점을 자각하는 데 있다. 동국대 문제가 보여주듯 이는 청년을 옥죄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의 싸움을 동반한다.
정권을 교체하는 데 <나꼼수>와 ‘공감콘서트’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주인’들과의 싸움에서는 백번의 공감콘서트보다 한번의 승리가 더 값지다. 이러한 싸움에서 얻은 승리야말로 청년들을 진보적 가치로 견인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외침이다. “문제는 공감이 아니야,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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