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만 0~2살 보육료 지원을 확대했지만
직장맘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직장맘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둘째가 8개월인데 오늘 같은 개월수 아기 키우는 동네 아줌마를 만났어요. 저한테 어린이집 보낼 거냐고 묻더군요. 제가 깜짝 놀라 이렇게 어린데 왜 보내요? 했더니… 자긴 하루 1시간이라도 보낼까 한다면서, 공짜인데 뭐 어떠냐면서. 지역카페 들어갔더니 직장맘이라 일찍 애들 맡기고 늦게 데리러 갔는데 원장이 어린이집 바꾸라고 이야기하더래요. 아마 손쉬운 대기자 넘쳐나니 직장 다니는 엄마 애들은 벌써 찬밥인가봐요. 사실 전업하면서 잠깐 맡기는 용도로 어린이집 이용한다면 어린이집에서도 땡큐잖아요.”
엄마들이 많이 드나드는 인터넷 사이트 ‘82cook’에 최근 올라온 글이다. 정부가 오는 3월부터 만 0~2살 영유아를 위한 보육료 지원을 확대했지만, 직장맘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만 0~2살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내면 누구나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자,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부모조차도 어린이집에 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입소 경쟁률은 더 치열해졌고, 그만큼 직장맘들이 느끼는 서러움과 비애감은 늘고 있다. 정부는 직장맘들의 일과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막으려 영유아 지원을 확대했지만, 정작 직장맘들이 어린이집을 못 구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아예 대놓고 직장맘들에게 눈치를 준다. “반일반 아이들 받으면 우리도 더 편하다”는 식의 얘기를 상담 온 직장맘에게 공공연히 한다. 직장맘 엄마들은 그 어린이집에서 자신의 아이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아예 반일반을 더 많이 받겠다는 심사로 만 0~2살 전업 부모를 상대로 집중 공략 전화를 돌려대는 얄미운 원장도 있다. 정부 지원이 되지 않는 만 3~4살 반을 빼버거리나 줄이고 만 0~2살 반을 늘리거나 신설하는 경우도 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누굴 위한 어린이집인가. 직장에 다니거나 아이를 직접 돌볼 상황이 안 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어야 하는 곳이 어린이집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부족하고, 민간 어린이집은 남아돌지만 엄마들은 믿고 맡기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대책 없이 지원 계층을 확대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정부의 눈먼 돈으로 배를 채우려는 ‘보육시설을 위한 정책’이 돼버렸다.
세 돌까지는 아이의 정서적인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다. 아이는 자기와 눈을 맞추고, 하루하루 변하는 아이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부모의 반응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 또 생후 3년 동안은 두뇌 발달이 가장 폭발적으로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아이와 부모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되도록 어린이집에 늦게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데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는 부모들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이 진정 자신의 아이를 위한 것인지 말이다.
당장 직장맘의 발등 위에 떨어진 불을 끄려면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제안을 새겨들을 만하다. 백 교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이용할 때는 직장맘 등 우선순위가 있는데 민간 어린이집은 그렇지 않다”며 “민간시설에도 정부가 지원을 하는 만큼 국공립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2월엔 모든 어린이집이 새 원아를 모집한다. 정부는 2월 말 종합대책을 발표한다지만, 너무 늦은 대처는 직장맘 앞에 놓인 불을 끌 수 없다. 신속한 조처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보육 지원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손볼 필요도 있다. 현재 정부는 종일제라는 단일 단위로 지원하고 있다. 이용 시간을 다양화해 이용 시간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향도 생각해볼 만하다. 무상 보육이라는 정치적 결정이 아닌, 실질적인 보육 지원 시스템이 절실하다.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anmada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나경원법’ 만드는 김에 ‘이명박법’도 만들어라”
■ 문재인 ‘양자대결’서 박근혜 첫 추월
■ 박원순 ‘오세훈 오페라하우스’ 대신 시민농장 짓는다
■ 3시간 이상 게임하면 아이템이 모두 사라진다?
■ “초졸·신불이지만…일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
<한겨레 인기기사>
■ “‘나경원법’ 만드는 김에 ‘이명박법’도 만들어라”
■ 문재인 ‘양자대결’서 박근혜 첫 추월
■ 박원순 ‘오세훈 오페라하우스’ 대신 시민농장 짓는다
■ 3시간 이상 게임하면 아이템이 모두 사라진다?
■ “초졸·신불이지만…일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