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가
매년 천만원 넘는 대가를 치르고
빚쟁이가 되면서까지 대학에서
얻고 배우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빚쟁이가 되면서까지 대학에서
얻고 배우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등록금 3%를 내리면서 장학금을 대폭 축소한다는 어느 대학의 뉴스를 듣고 모욕감을 느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졸자의 67.9%가 평균 1308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이야 모르던 바가 아니었지만, 대졸자 열명 중 일곱명이 빚쟁이라는 통계는 무척 충격이었다.
단순하고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20대는 등록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30대는 결혼 자금과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한다. 40~50대는 내집 마련과 자녀 교육비 충당을 위해 일하고 60대가 되기도 전에 퇴직한다. 모아놓은 돈도 일거리도 없는데 때맞춰 자식이 대학에 들어간다. 지방에 살던 자식이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된다면, 맙소사. 본격적인 돈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1969년에 우골탑이라는 말이 등장했으니, 대학 등록금은 40~50년 전에도 터무니없이 비쌌다고 볼 수 있다. 그때는 부모가 집 팔고 소 팔아서 교육비를 댔지만, 지금은 학생이 빚을 져서 등록금을 해결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곧 요즘 부모들에겐 등록금을 대기 위해 팔아치울 소도 집도 없다는 말이고, 있는 재산을 다 팔아치워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등록금이 올랐다는 말이다.
고졸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는 반면, 대졸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26.6%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평균 초봉 차이는 665만원 정도다. 학력은 연봉 인상이나 승진 등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빚 없이 20대를 시작하는 대신 끝없이 이어질 차별 대우를 감내할 것인가. 빚을 지더라도 대학을 졸업한 뒤 다수와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할 것인가. 졸업 이후의 행로를 취업으로만 한정한다면 선택은 두 갈래로 나뉘고, 우리나라의 젊은이 대부분은 대학 진학을 택한다. 매년 천만원이 훌쩍 넘는 대가를 치르고 빚쟁이가 되면서까지 그들이 대학에서 얻고 배우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각 대학의 건학 이념을 살펴보면 별별 좋은 말은 다 들어 있다. 국가와 인류사회, 민족문화와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인재 양성 등등. 대학이 그런 것을 위해 만들어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천억원대의 적립금을 쌓아놓고도 돈이 부족하다며 매년 등록금을 올리는 데 혈안이었던 이유가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나? 한국의 대학들은 이상 실현과 세계 평화라는 교육이념을 내건 채 장사와 투기를 업으로 삼고, 학생을 인재가 아닌 돈으로 본다. 사람들은 교육만큼 돈 되고 전망 있는 사업이 없다고들 하고, 가방끈 짧으면 사람대우 못 받는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관문에 불과하다. 성적이 나오면 지원 가능한 대학부터 찾아보고, 꿈과 상관없이 대학 교육은 필수라고들 생각한다. 고졸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고, 재능이나 가능성보다 학력을 잣대로 사람을 뽑고 대우하는 행태를 당연시한다. 어릴 때부터 대학에 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 외의 길은 보여주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진학을 필수 코스로 만들어 놓은 뒤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을 요구하여 청년 열명 중 일곱명을 빚쟁이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교육 사업이다.
이제 곧 새 학기가 시작되고, 빚쟁이 학생은 더 늘어날 것이다. 12학번 새내기가 졸업을 할 가까운 미래에,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학교를 나설까. 대학을 다닌 게 인생의 값진 경험이었다고, 수천만원의 빚으로 얻어낸 졸업장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나는 이렇게 일만 하고 빚만 갚다 죽겠구나, 세상은 불공평하고 대학은 날강도이며 명문대 아니면 다 소용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될까.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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