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의 러트거스 광장에 1만5000여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먼지 자욱한 공장에서 하루 14시간 힘들게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대대적인 시위는 여성 참정권과 생존권,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으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갔다. 매년 3월8일, 지구상의 여성들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조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올해 3·8 여성대회는 3월10일 토요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다. 특이한 점은 이번엔 환경운동단체들이 벌이는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 행사와 연계한다는 것이다. 절묘한 울림을 주는 연대가 아닌가? 여자도 남자와 같은 인간이니까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시위를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자들은 남자처럼 되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남자들이 주도한 세상이 죽음을 향해 가는 세상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자기 파괴적인 성장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가 바로 여성들이 풀어야 할 과제이고 이는 환경운동과 함께 가야 할 운동인 것이다.
<성장의 한계> 집필을 주도한 경제학자 도넬라 메도스 여사는 1972년에 이런 사태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세계 인구와 산업화, 오염, 식량 생산, 자원 약탈이 지속된다면 지구는 앞으로 100년 안에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구와 산업 생산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급락할 것이다.” 선견지명을 가진 이 여성의 말을 잘 새겨들었다면 세계가 이렇게 급격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이끌어가던 이들은 메도스의 말보다 성장주의 전도사였던 허먼 칸의 말을 따랐다. 허먼 칸은 “우리는 첨단 기술만으로 100년 동안 전세계 150억명을 1인당 2만달러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아주 보수적으로 잡아도 그렇다는 말이다”라고 말하였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성장주의와 과학기술주의에 미쳐 있다. 과학기술과 돈을 숭상하는 이들이 주도하는 세상은 남의 삶을 거리낌 없이 짓밟는 “먹(고) 튀(는) 족(속)”만 살아 남겨둔다. ‘먹튀족’은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는 동시에 ‘안전하게 마실 물’이라며 물을 팔아 돈을 챙긴다. 유전자 조작 품종으로 돈을 버는 외국 농산물 기업을 위해 자국 농부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온갖 방법으로 우울증 약 복용을 유도하는 의료체계 속으로 국민들을 끌어들여 자활 능력을 상실하게 한다. 주민들에게 사업의 정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뉴타운과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여 주민들을 하루아침에 도탄에 빠뜨리고, 안전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는 원전사업을 벌여 후세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과학기술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왜 흔하디흔한 태양과 바람과 지열을 활용할 기술을 발달시키지 않았을까? 왜 농사를 지을 농토에 활주로를 깔고 비싼 비행기와 연료를 사용해서 그 먼 곳으로부터 농산물을 가져와야 할까? 어린이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 비행기가 군사용으로 개발된 발명품이라는 것, 핵발전소는 핵무기를 만들다가 개발된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 해답은 간단히 나온다. 근대문명은 군사주의에 바탕을 둔 남성 중심 체제였고 한국은 그중에서도 좀 심한 돌격대같이 근대화를 했던 나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저임금 노동자 비율, 노인 빈곤, 남녀 임금격차, 낙태율에서 1위, 그리고 최저 출산율의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문명적 전환의 과제이며,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이 온전한 삶을 살다가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되찾는 일이다. 그래서 승자 독식이 아니라 공생의 삶을 일구고 싶은 이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세상을 조율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다. 3월10일, 아이의 손을 잡고, 친구·남편·어머니·아버지와 함께, 특히 현재 ‘결혼 파업’, ‘출산 파업’ 중인 멋쟁이 이모와 고모들은 조카들을 데리고 시청 광장으로 나오시라. 박완서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을 위하여 학습을 시작하자!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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