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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해적을 위하여 / 한윤형

등록 2012-03-11 19:18

한윤형  자유기고가
한윤형 자유기고가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가가 합법적
강도에 불과하다고 믿는 이들도
제 신념을 지키며 살 권리가 있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한 김지윤씨가 “제주 해적기지 건설 반대” 피켓을 들자 온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보수진영은 이걸 핑계로 대대적인 색깔론 반격에 나섰다. 물론 그의 주장에 분노나 불편함을 느끼는 시민이 보수진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문제엔 제법 여러 맥락이 섞여 있다.

먼저 제주지방에서 반대론자들이 ‘해적기지’란 표현을 쓰는 건 이해가 간다. 주민 동의를 받지 않은 공권력이 ‘외적’으로 인지된다면 그건 주민 책임을 묻기 전에 공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질 일이다. 더구나 제주도는 4·3사건 등을 경험했고 ‘뭍사람’의 정치논리에 그들이 희생당했단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곳이다. 만일 김지윤씨가 이러한 지역정서를 대변하려 한 거라면, 피켓 소동은 전국적으로 보도될 매체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세련되지 못한 표현의 문제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나 김지윤씨 인터뷰를 보면 그의 발언은 어떤 ‘사상’의 문제로 보인다. 그는 지역 여론을 핑계 삼아 얄밉게 한발 물러서기보다, 다소 성기더라도 제 생각을 떳떳하게 밝히려 한다. 합리적으로 해석해 보면 그는 군대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벗어나 특정 지역민을 억압하거나 해외에서 패권을 추구할 경우 해적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전자를 ‘이명박 정권과 해군당국’에 결부시키고 후자를 ‘제국주의적 해양지배를 하려는 미군의 합법적 해적질’에 결부시켜 제주해군기지가 해적질을 통해, 해적질을 위해 건설되는 것이라 파악하는 것 같다.

해군 및 해군 출신 시민들의 분노도 이해는 가지만, 그것은 제주해군기지의 군사적 유용성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기보다, 군내에서 육군에게 핍박받던 해군이 이제야 뭔가 해보려는데 탄압을 받는 상황에 대한 분노인 것 같다. 새만금, 정선 카지노, 동남권 신공항의 유용성에 대해 우리가 해당 지역민과 함부로 논쟁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분노는 자유지만 안보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분노에 동참해야 한단 식의 선동은 합리적이지 않다. 안보문제에 대한 고민이 제주해군기지를 하필 강정마을이란 특정한 위치에 반드시 지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하니 말이다.

더구나 해군참모총장과 강용석 등이 김지윤씨를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건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가가 합법적 강도에 불과하다고 믿는 이들도 제 신념을 지키며 살 권리가 있다. 이게 처벌 대상이 된다면 ‘국개우원’ 등 시민들이 정치권을 조롱하는 갖가지 단어들도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지난 몇년간 박원순 명예훼손 소송과 <피디수첩> 소송 등에서 국가기관이나 그것의 공적 업무에 대한 비판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판례가 축적된 것으로 안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런 발언을 법적으로 처벌하려는 욕망을 거두고, 다만 <조선일보>가 그것을 “정신 나간 젊은이”의 “헛소리”라 비판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자당의 정치적 지향이 그 정도 수위의 공적 발언을 허용할 만한지 한번 토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군대를 신성시하는 이들은 ‘해적’ 발언에 분개하겠지만, 냉소주의자들은 “그래서 우리가 더 강한 해적을 만들어야 하잖아?”라고 반응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는 김지윤씨의 비판 방식을 선호하진 않는다. 그러나 ‘해적’ 발언 논란이 감추는 건, 외교·국방 문제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양자택일만으로 설명하려는 보수의 무책임함과 역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진보의 무능이다. 선거를 앞두고 상대편에 대한 혐오정서를 총동원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고 강변하는 건 민망한 일 아닐까.

한윤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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