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온통 시뻘건 점퍼로 출렁였다. 21일 오전 11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새누리당 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은 당선자 대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축제 분위기였다. 공천을 받은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축하한다”고 인사를 나눴다. 박근혜 위원장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그러나 얼굴엔 자신감이 넘쳤다.
“돌이켜보면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과연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와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이제 우리는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살린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걸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그는 애국심을 가질 것,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을 당부했다. 나라, 애국심이라는 보수의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변화’라는 하나의 개념에 집중하고 있다. 야당의 정권심판 공세를 차단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선거 현장에서도 ‘박근혜’는 인기 품목이다. 부산의 어떤 유권자는 “박정희가 부산에서 군수기지사령관을 하면서 5·16을 기획했다”고 말한다. 충남에서는 “박정희가 현충사를 세웠고 생애 마지막 행사로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말한다. 말이 잘 안되는 이유를 애써 찾아가면서까지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아무도 못 말린다.
공천 탈락자들이 대부분 승복과 불출마를 선택하는 것도 알고 보면 박근혜 위원장 때문이다.
“억울하고 원통해도 당의 결정에 따르려 합니다. 제가 일관되게 외쳐온 좌파세력 집권 저지와 당의 정권 재창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총선이 끝난 후 저는 이 나라의 참 보수와 정통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더욱 강건히 일하겠습니다.”(부산 진을 이종혁 의원)
불출마의 변 행간에는 정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다른 좋은 자리로 보상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심리가 언뜻언뜻 비친다.
박근혜 대세론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첫째, 유권자들의 ‘메시아 신드롬’이다. 대통령 한 사람 잘 뽑으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둘째, 기득권층·보수·영남의 위기감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 2011년 4·27 및 10·26 재보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기득권층·보수·영남이, 정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강하게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박근혜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 역량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1998년 정치에 입문했다. 어느새 14년 경력의 베테랑 정치인이다.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으로 자신을 우뚝 세우는 데 성공했다. 야당심판론을 제기할 정도로 정치적 기술이 뛰어나다. 정책에 대한 공부도 꽤 많이 했다는 티가 난다.
넷째, 야당의 부진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최근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정치인들을 보면 능력이 없는데다 욕심까지 많다는 의심이 든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외면하고 한 줌도 안 되는 각 계파의 이익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민주통합당의 구민주계, 친노무현 세력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의 당권파, 유시민 세력 등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마다 미세한 차이로 승부가 난다. 광역 단위 선거에 비해 훨씬 예민할 수밖에 없다. 20~30대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몰려나올까? 지금으로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야당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오후 2시 중소기업중앙회 지하 그랜드홀에서는 민주통합당 선대위 출범식 및 공천장 수여식이 열렸다. 한명숙 대표는 “국민들은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투표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여자 이명박에 의한 정권 연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행사장 분위기는 썰렁했다. 손학규·정동영·문재인·문성근·이인영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한 시간 뒤, 박영선 최고위원은 국회 기자실에서 잘못된 공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야당의 앞날은 캄캄하다. 정치가 균형을 잃고 있다. 국민들만 불쌍하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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