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에세이스트
피라미드가 너무 미끄럽고 고단해
누군가 쉽게 올라가는 꼴을 보면
다들 속이 뒤집히는 게 아닐까
누군가 쉽게 올라가는 꼴을 보면
다들 속이 뒤집히는 게 아닐까
전에는 공중에 날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그 시간에 검증된 정보, 그러니까 책을 읽자는 결심으로 자발적으로 인터넷을 켜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무서워서 인터넷에 못 들어간다. 그래도 메일 확인은 해야 하니 잠깐이라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클릭하기 딱 좋은 곳에 자리잡은 포털의 인기 기사들은 하나같이 누가 양악 수술을 했네, 누가 몇십 킬로그램 감량을 했네, 누구누구 눈물 펑펑…, 여하튼 내가 이걸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들이다. 클릭수를 늘려야 하는 담당자들의 고충도 알겠건만 뉴스 제목 낚시에 나는 번번이 속아 넘어가고 또 화가 치민다. 모 양과 모 군 입맞춰…(듀엣곡에서), 모 씨 자살 시도…(15년 전에 생활고를 비관해서), 모 후보 사퇴…(까지 한때 생각), 뭐 죄다 이런 식이다.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인 셈이다. 게다가 이런 기사들을 보고 나면 반드시 양옆 어딘가에서 “부장님 몰래 ‘그것’ 조이던 A양 결국…” 뭐 이런 광고문구들이 보기 싫어도 마구 튀어나온다. 순간 안구가 썩는 듯한 불쾌감을 생각하면 아무리 이게 기사를 공짜로 보는 대가라 해도 불공정거래다 싶다.
어제는 ‘담배녀 응징’이라는 기사를 클릭했다. 뭐든지 ××녀야, 순간 언짢았다가 통쾌한 말맛을 지닌 ‘응징’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쓰는 광경을 보니 기가 질려 ××년이라고 부르고 싶은 걸 그나마 ××녀라고 해주나 보다 싶었다. 이 일뿐 아니라 뭐든 생기면 사람들의 생생한 증오를 보는 것이 무서워서 심약한 나는 인터넷을 자꾸 피하게 된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켜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만 나오는데, 재주 있는 사람들의 경합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그 사람의 사연도 재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다. 서바이벌 포맷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때 어쩌면 우리는 최종 승자보다 누군가의 실패가 더 궁금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 사회라는 피라미드는 떨어지지 않으려면 올라가는 길밖에 없는데 이 피라미드의 경사는 계속 가팔라지고 누가 기름칠해둔 듯 매일 더 미끄러워진다. 그러나 한번 미끄러졌다간 그나마 지금 자리로 다시 올라올 길도 요원하므로 우리는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수밖에 없다. 사실 저 위에는 이렇게 올라온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저마다 마음에 끓는 화를 품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양해질수록 도전자들의 사연도 정교해지는데, 우리는 점점 더 진하고 강한 사연을 원한다. 너만한 실력은 다 있어, 네가 꼭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봐. 이 광경은 도대체 ‘자소서’(자기소개서)에 온갖 활동 경력은 물론이고 에스엔에스, 춤추고 노래하는 동영상까지 첨부하는 청년들과 닮았다. 이제 노래만 잘하면 되는 건 <전국노래자랑>뿐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자투표를 하는 시청자건 자소서를 보는 면접관이건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 하나다. 더 간절해야 해, 더. 더 처절하게 보여줘, 네가 원한다는 것을. 더. 더. 더.
옛날에는 대학 나오면 취직이 됐다던데, 요즘은 스펙 더하기 처절함이 있어야 한다. 특이한 내용과 다양한 포맷의 자소서가 많아지는 것처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도전자의 실력보다 사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도전자들의 간절함이 싫은 게 아니라 이들에게서 간절함을 짜내려 하는 엄혹한 분위기가 숨이 막힌다. 다들 너무 힘들게 올라가다 보니 그런 것일까. 이 피라미드가 너무 미끄럽고 고단해서 누군가 쉽게 올라가는 꼴을 보면 다들 속이 뒤집히는 게 아닐까. 나는 그저 사람들이 어제 그거 봤어? 하면 어? 하고 입을 닫는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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