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자유기고가
복지국가의 전제가 되는 노동권,
한국 현실에서 그것은 혁명에 준하는
싸움 없이는 얻어내기 매우 힘들다
한국 현실에서 그것은 혁명에 준하는
싸움 없이는 얻어내기 매우 힘들다
선거 일정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앞으로 한국의 정치지형을 크게 바꿀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총선 이후’이다. 총선에서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 이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그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엠비 심판’의 구호가 난무하는 와중에서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복지국가’로 수렴되는 것 같다.
여기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복지국가의 위상은 본질적으로 ‘부산물’이다. 즉 그것은 과거 구미열강에서 실패했던 혁명적 시도들이 낳은 타협의 산물이다. 오늘날 복지국가의 몇몇 측면이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눈에는 ‘이상적’으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할 수만은 없다. 이를테면 복지국가의 기본 전제는 노동시간 단축과 질 좋은 일자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지국가란 바로 그러한 노동권을 둘러싼 싸움을 통해 성립한 것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그것은 거의 혁명에 준하는 싸움 없이는 얻어내기 매우 힘들다.
이명박이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진 다음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할 때 우리가 대면할 장애물을 직시해야 한다. 예컨대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복지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다시 한번 보수언론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료들, 그리고 자본가·재벌과 싸워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진정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동안 조직되지 않았던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복지’든 ‘경제민주화’든 그러한 사회적 보장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사람들이 비로소 복지정책을 미사여구로 받아들이지 않고 힘있게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세력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러한 미조직·불안정 노동자들을 이 사회의 정치적 주체로 조직해내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념의 시대는 끝났으며 실용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의 의회정치에서 목도하는 것은 오히려 더 괴상한 이념과잉이다. 에스엔에스에서 ‘개념 있는 시민’들의 투표를 호소하는 진보인사들을 보라. 그들은 민주주의·상식·양심·정의와 같은 보편적인 대의에 직접 호소하곤 한다. 결국 이들에게 선거와 같은 제도정치의 범주들은 점점 더 ‘적과 아군’, ‘상식 대 비상식’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를 곧바로 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의회에서 그러한 적대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적대는 다른 곳, 이를테면 자신의 노동권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일상의 노동현장에 있다. 우리는 포스트모던 의회주의의 이러한 뒤틀린 모습을 본연의 좌파정치가 부재한다는 징후로 읽어야 한다.
좌파들에게 전가되곤 했던 ‘보편성에 대한 위험한 열망’과 ‘본연의 올바르고 질서정연한 의회정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직접적인 정의와 보편성에 대한 위험천만한 동일시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오히려 에스엔에스를 매개한 의회정치이다. 그러한 열망 속에서 등장하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유력한 ‘자유주의적’ 대안이 바로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이해를 매개해서 무엇이 허위의 정치적 열망이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좌파세력이다. 점차 의회주의적인 경쟁이 유일한 정치적 ‘적대’의 장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우리에게 다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아래로부터 자신의 계급적 이해, 그리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누려야 할 공통의 삶의 영역에 대한 감수성을 복원해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역할을 떠맡을 좌파세력과 의회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이를 대변할 정당이 필요하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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