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사회갈등을 다룰 때 무엇을 갖고 왜 다투는지를 제쳐놓고 갈등 행태만을 부각시키는 프레임(접근법)이 있다. 노동자들이 왜 참지 못하고 쟁의를 일으켰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파업, 점거, 농성 그리고 산업 피해만을 부각시키는 예가 대표적이다. 보수언론은 여론몰이에 이런 프레임을 자주 쓴다. 이 경우에 갈등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하는 쪽이 자기주장을 알릴 기회도 없고 너무 억울하기 때문에 절대 타협하지 않고 죽기살기로 싸우게 되는 까닭이다.
갈등 당사자들이 싸우는 이유를
제쳐놓고 갈등 행태만
탓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통합진보당 갈등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애초 비례대표 경선 조사결과를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이 특정 계파의 행태 문제로 초점이 옮아갔다가 폭력사태로 비화했다. 집단 갈등은 대립하는 양쪽이 각자 주장을 내세우며 공방전으로 진행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권파라는 집단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 현상이 좀 특이하다. 비판의 초점도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들의 행태’에 맞춰지고 있다. 문제는 이 와중에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무엇을 놓고 왜 다투게 되었는지, 본연의 ‘사실 논의’가 실종된 점이다. 적절한 프레임이라고 할 수 없다. 작은 것부터 바로잡아 보자. 갈등 행태가 부각되다 보니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당원 직접투표로 선출하려 했다는, 정당 민주주의 차원의 의의마저 무시되고 있다.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는 대개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망자와 추천 등을 종합해 선정한다. 계파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계파 우두머리들끼리 나눠먹기 쉬운 구조다. 통합진보당의 당원투표제는 다른 정당에 비해 진일보한 제도다. 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더라도 대중정당, 온·오프라인 투표제도, 진성당원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할 거냐를 함께 고민해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큰소리칠 건 별로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경선관리 자체로 들어가 보자. 오프라인 투표도 흠이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전체 투표의 85%를 차지하는 온라인 투표의 유·무효 시비다. 이를 두고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는 소스코드를 누군가 중간에 열어봤으니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당권파는 소스코드는 열렸지만 그것은 단순히 투표 안내 페이지의 색깔 따위를 손보려는 것이었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투표 데이터는 열린 적이 없다, 즉 투표 데이터는 조작된 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지난 11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온라인 투표의 유효성 논란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특별진상조사위원회를 당 밖 인사를 많이 넣어 짜기로 했으니,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도 각자 주장의 진위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안도했다. 과학적·기술적 검증을 통해 사실을 규명함으로써 관리 부실이냐 총체적 선거부정이냐의 논란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통합진보당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쪽으로 사태가 번져갔다. 엊그제 당원들의 폭력행위는 소수파가 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엄중하게 사죄할 일이다. 이정희·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도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강기갑 비상대책위가 구성됐지만 당권파 당원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이럴수록 중요한 것은 경선관리 실태를 전면적으로 재조사해 사실관계를 밝혀주는 일이다. 승복과 타협,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사실의 힘만한 것이 없다. 여론몰이로 찍어누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노회찬 대변인의 언급이 합리적이다. 진보정당의 분란이 빨리 수습되길 간절히 바란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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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쳐놓고 갈등 행태만
탓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통합진보당 갈등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애초 비례대표 경선 조사결과를 둘러싸고 빚어진 갈등이 특정 계파의 행태 문제로 초점이 옮아갔다가 폭력사태로 비화했다. 집단 갈등은 대립하는 양쪽이 각자 주장을 내세우며 공방전으로 진행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사태는 당권파라는 집단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 현상이 좀 특이하다. 비판의 초점도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들의 행태’에 맞춰지고 있다. 문제는 이 와중에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무엇을 놓고 왜 다투게 되었는지, 본연의 ‘사실 논의’가 실종된 점이다. 적절한 프레임이라고 할 수 없다. 작은 것부터 바로잡아 보자. 갈등 행태가 부각되다 보니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당원 직접투표로 선출하려 했다는, 정당 민주주의 차원의 의의마저 무시되고 있다.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는 대개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망자와 추천 등을 종합해 선정한다. 계파간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계파 우두머리들끼리 나눠먹기 쉬운 구조다. 통합진보당의 당원투표제는 다른 정당에 비해 진일보한 제도다. 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더라도 대중정당, 온·오프라인 투표제도, 진성당원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할 거냐를 함께 고민해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큰소리칠 건 별로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경선관리 자체로 들어가 보자. 오프라인 투표도 흠이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전체 투표의 85%를 차지하는 온라인 투표의 유·무효 시비다. 이를 두고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는 소스코드를 누군가 중간에 열어봤으니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당권파는 소스코드는 열렸지만 그것은 단순히 투표 안내 페이지의 색깔 따위를 손보려는 것이었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투표 데이터는 열린 적이 없다, 즉 투표 데이터는 조작된 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지난 11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온라인 투표의 유효성 논란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특별진상조사위원회를 당 밖 인사를 많이 넣어 짜기로 했으니,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도 각자 주장의 진위를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안도했다. 과학적·기술적 검증을 통해 사실을 규명함으로써 관리 부실이냐 총체적 선거부정이냐의 논란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통합진보당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쪽으로 사태가 번져갔다. 엊그제 당원들의 폭력행위는 소수파가 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엄중하게 사죄할 일이다. 이정희·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도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강기갑 비상대책위가 구성됐지만 당권파 당원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이럴수록 중요한 것은 경선관리 실태를 전면적으로 재조사해 사실관계를 밝혀주는 일이다. 승복과 타협,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사실의 힘만한 것이 없다. 여론몰이로 찍어누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노회찬 대변인의 언급이 합리적이다. 진보정당의 분란이 빨리 수습되길 간절히 바란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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