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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월 1만원 당비로 진보의 재구성을 / 백기철

등록 2012-05-22 19:16수정 2012-05-22 21:22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젊은 시절 한때 진보정당에 투신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민주사회로 가기 위해선 보수-혁신정당 체제가 자리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진보정당의 싹을 틔워야 한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신문사에 입사해 기자의 길을 걸었다. 20년도 지난 일을 꺼낸 이유는, 그 시절 이후 진보정당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걸 최근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통합진보당 사태가 계기가 됐다.

그간의 정치 현실에서 진보정당은 매번 후순위였다. 1997년 첫 정권교체, 10년 민주당 집권 시절 내내 진보정당은 찬밥이었다. 당장 급한 현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먼 미래를 위한 여유분의 투자 정도로 생각했던 걸까. 2000년 총선 무렵 전대협 중추 세력들이 동교동 가신들의 손에 이끌려 대거 민주당에 입당한 데서 보듯, 진보정당은 잘나가는 일류들은 찾지 않는 이류들의 정당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풍찬노숙하며 외로이 진보정당의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일 것이다. 알아서 잘해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당신들이 어떻게 진보의 대표냐며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지금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에게 마냥 돌을 던질 수 없는 노릇이다. 당권파가 후진적 모습을 드러냈다면 우리 시대 진보의 토양이 그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폐쇄적이고 기형적인 당권파의 모습은 그들에게 진보라는 이름을 내맡겨버린 우리들, 진보적 가치관을 꿈꿔온 모든 이들의 책임인지도 모른다.

당권파한텐 안됐지만, 여기까지가 아닌가 싶다. 그간 고생했지만, 이제 정치의 현장에서 벗어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됐다. 최근의 사태는 진보정치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진보정당을 둘러싼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등장으로 순진한 주사파식 접근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양극화 심화로 진보정당 정책의 현실 적합성이 커지면서 더 책임 있는 정책과 인물이 요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들 것인가?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을 찍은 219만8천여명 중 10%만 당원이 되어도 진보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다. 통합진보당 당원이 7만5천여명이라니, 이렇게 되면 세 배가 순증하는 셈이다. 지금의 통합진보당은 유권자의 큰 지지를 받아안기에는 너무 취약하다. 정권교체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너무 후진적이다. 세련된 진보, 현대화된 진보, 유연하면서 강력한 진보정당을 원한다면 월 1만원의 당비를 투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진보정당이 엉망이니 야권연대를 파기하고 진보를 내팽개치면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진보의 기저를 다지는 문제는 모든 게 엉망인 전체 개혁진보진영 재구축의 시작일 수 있다. 연말 대선에서 제대로 된 진보의 힘을 합쳐내지 못하면 정권교체도 무망하다.

최근 통합진보당에 입당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나서자는 이른바 진보 시즌2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지도부 선출 당시 온라인 투표 행렬이 이어졌듯, 통합진보당 입당 행렬이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통합진보당이 예뻐서가 아니다. 통합진보당을 정상으로 돌리는 일은 진보 재구성의 단초다. 지금 통합진보당에 입당한다 해도 6월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긴 어렵다고 한다. 투표권을 가진 진성당원이 되려면 일정 기간이 경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진보정치를 제대로 세우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된다면 주저할 일이 아니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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