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논설위원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대선 출마를 아직도 고민중이라지만, 아무래도 대선에 뛰어드는 쪽인 것 같다. 대선 주자로 보면 안철수는 조직이든 사람이든 보잘것이 없다.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 같다. 민심만 믿고 뛰어들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과연 안철수 대통령 프로젝트는 현실화할 수 있을까?
안철수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 핵심은 경제정의일 것이다. 양극화 시대에 격차의 해소가 그에게 맡겨진 소명이란 얘기다. 신자유주의적 승자독식 사회에서 중소기업·비정규직·99% 서민의 눈물을 닦아줄 구원투수가 돼달라는 게 안철수 지지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안철수는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경제대통령감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안랩을 이끌며 중소기업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을 것이고, 몇몇 재벌 가문이 좌우하는 독점자본의 폐해도 체감했을 터다. 안철수에게는 재벌체제의 발전적 재구성까지도 기대해봄직하다. 재벌들이 안철수의 집권 가능성에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안철수 프로젝트의 또다른 요소는 그가 진영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다. 종북 문제든 제주 해군기지든 한-미 에프티에이든 원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여야의 전통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림으로써 화석화된 진영논리에 대한 심판자 구실을 할 수 있다. 여야 정치권에 식상한 무당파층이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안철수의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하다. 진영논리에서 자유롭다는 건 어느 한 진영도 자기편이 아니라는 얘기다. 경제에 강점이 있다면 외교안보는 맹탕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당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문민화된 김영삼 이후 네 명의 대통령은 어찌됐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본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국가적 현안을 처리하면서 정당의 조직·이념·정책적 토대가 없으면 중심을 잡기 힘들다.
안철수 프로젝트의 최대 화두는 시민정치의 가능성과 한계로 모아진다. 다시 말해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 안철수식 시민정치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밀어올릴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정당정치와 시민정치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생각할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박원순은 승리한 시민정치의 전범이다. 정치의 바깥에서 정치의 복판으로 뛰어들어 승리했다. 안철수식 시민정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선순환적 결합, 안철수와 개혁진보진영의 상호보완적 연대만이 야권이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여는 길이다. 안철수로 상징되는 시대적 좌표와 야권의 구체적인 정책·인물이 결합할 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윈윈할 수 있다. 정책협의체 같은 걸 만들어 공통분모를 찾고, 일정한 시기에 그림자내각을 구성할 수도 있다. 공동정부 운영을 확고히 하기 위해 헌법적 틀에 대한 검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협업 틀이라면 안철수가 꼭 이번에 자신이 대선 후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지 모른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승리는 민주당과 노사모라는 시민조직이 결합한 결과였다. 노무현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재벌개혁 할 줄 알았더니 삼성에 투항했고, 자주외교 한다더니 이라크 파병을 했다. 말이 앞섰을 뿐 정책과 인물의 구체성이 부족했다. 안철수는 노무현의 승리보다 노무현의 실패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정치란 게 그렇듯, 안철수 프로젝트에는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은 전대미문의 정치드라마를 엮어내기도 하고, 이변은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꿈꾸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안철수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백기철 논설위원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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