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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두 개의 눈 / 백기철

등록 2012-07-17 19:17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보면서 솔직히 좀 불편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완벽했다. 공판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국가 폭력의 불의함을 잔잔하면서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생지옥 현장에서 스러져간 여섯 목숨의 들릴 듯 말 듯 한 슬픈 절규가 가슴을 때렸다. 하지만 한구석에선 뭔지 모를 부담감이 느껴졌다. 예고된 분노, 예고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감 같은 것이었다.

사회적 사건에는 100% 진실이란 없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100%의 진실이 가능할까? 설사 정부 주장이 맞다 하더라도 100%는 아니다. 이면에는 20%, 30%의 다른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같은 논리로 <두 개의 문>이 그려낸 용산참사가 100%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영화를 보며 조금 불편했던 것은 용산참사를 전혀 다르게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별로 투영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희망버스, 쌍용차 문제, 그리고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들 사안이 그들만의 리그, 좌파만의 분노, 어차피 한통속인 사람들끼리의 동질감 확인 정도에 그치고 국민적 확장성을 갖지 못한다면 종국적으로 이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더 멀어질 수 있다. 스테레오타입화한 분노만으론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연말 대선에서 박근혜가 집권한다면 박근혜가 좋아서가 아니라 좌파가 못미더워서일 것이다. 좌파가 경직된 논리로 앵무새처럼 과거 이슈들에 매달려 분노와 심판의 선거로 일관한다면 국민은 좌파에게 나라 맡기는 걸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국민은 차차선 정도지만 박근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할지 모른다. 4·11 총선이 좌파에게 던지는 경고는 분명하다. 대선에서 또다시 얼치기 좌회전했다간 필패라는 점이다.

좌파가 중산층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게 이념적으로 가운데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산층은 신자유주의 강자 독식 사회에서 이미 숨막힐 대로 숨막혀 있다. 중산층은 충분히 좌회전했다. 층 자체가 통째로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근혜가 5년 전 성장 일변도의 ‘줄푸세’ 공약에서 이번에 경제민주화를 첫손가락에 꼽은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중산층의 좌회전은 이념적 좌회전이 아니다. 꽉 막힌 우리 사회의 현실에 절망하지만, 그렇다고 목소리 높은 좌회전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정책 대안이 있는 좌회전, 현실 적합성 있는 좌회전을 요구한다.

용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철거민 문제의 실질적 개선방안 하나라도 내걸고 그다음에 목소리 높일 일은 높여야 한다. 재벌 문제도 그렇다. 실현 가능성이 불분명한 재벌개혁 아이템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놓고 명분만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아, 이 당이 집권하면 재벌 문제에서 이것 하나는 정말 바뀌겠구나’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정하고 대표 공약 하나라도 분명히 내걸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솔직히 말해야 한다.

영화는 현실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두 개의 문>은 그런 점에서 강력한 무기다. 현실을 해석하고 행동하고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는 한 개의 눈이 아닌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두 개의 눈이 있는 것은 좌우 양쪽의 눈으로 세상을 균형있게 바라보라는 것일 게다.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똑바로, 폭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정의가 무엇인지 판단이 서면 결연히 행동할 일이다. 그것이 억울하게 숨져간 용산 희생자들의 해원, 가해자들에게 대한 사법적·정치적·역사적 단죄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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