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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의 ‘유신 2.0’ 언론관 / 김이택

등록 2012-10-11 19:13수정 2012-10-12 10:48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인혁당 발언’ 파문이 컸던 건 사람들이 박근혜의 속마음을 그만큼 몰랐다는 얘기다. 이미 자기만의 공간에 오랫동안 유신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남겨왔는데도 말이다.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걸 보니 인생의 서글픔이 몰려왔다”(<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2007) “배신도 당해보고…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서, 어찌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설 수 있으랴.”(<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1993) 그래서 결국 “자나깨나 꿈과 희망이 있다면 오직 왜곡을 바로잡아서 역사 속에서 (아버지가) 바른 평가를 받으시게 하는 것, 오매불망 그것만이 하고 싶은 일이었고 또 해야 할 일이었다.”(위 책)

정치 입문 10년 뒤인 2007년에 쓴 책에서조차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흉한 일도 없을 것”이라고 적어놓을 정도로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배신감’을 삭이며 ‘아버지 복권’의 꿈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랬던 그가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은 물론 대선 때문일 것이다. 말에 진정성이 담기지 않았다는 건 곧바로 확인됐다. 말춤 춘 건 그렇다 쳐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국민의 고통을 치유하겠다”고 해놓고 당장 최대 현안인 ‘과거사’로 떠오른 장준하 선생 의문사 조사조차 대선 뒤에 하자고 발을 뺐으니 말이다.

그가 유신 시절의 여러 일에 대해 마음속에서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단순히 자식으로서 아버지 행적을 긍정적으로 보는 혈육의 도리 수준인지, 아니면 아직도 뼛속 깊이 유신의 정당성을 새겨놓고 있는지, 속마음을 절절하게 토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그에게서 인혁당 발언에서 풍기는 유신의 그림자를 볼 때가 있다. 문화방송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의 눈에서 발사되는 레이저처럼 서늘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지난 7월 여야는 국회 개원협상 끝에 “새 방문진 이사회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노사관계에 대한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노사 양측 요구를 합리적 경영판단 및 법 상식과 순리에 따라 조정 처리하도록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표현은 추상적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사실상 새 방문진 이사회가 문제 많은 김재철 사장을 바꾼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김 사장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건 물론 적반하장으로, 공정방송을 외치는 언론인들에게 징계, 해고의 칼날을 마구 휘둘렀다. 친박 핵심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회 문방위에서의 청문회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 박근혜의 지침이나 언질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겉으로는 “잘 해결되기 바란다”고 말해놓고 뒤로는 사실상 이대로 대선까지 쭉 밀고 가겠다는 생각을 굳힌 모양이다. 문화방송 <뉴스데스크>는 얼마 전 안철수 논문표절 의혹 등을 연속으로 보도했다. 누가 봐도 무리한 기사를 내보낸 이유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유신 시절 언론은 검열과 지침, 언론인은 연행과 고문을 감수해야 했다. 새누리당 정권 아래선 ‘조인트’ 정도만 까도 알아서 기는 어용 언론인들을 활용해 ‘유신 2.0’ 버전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민주정치의 기본인 언론자유가 이렇게 망가지는 걸 방조하는 박근혜가 경제민주화 운운하는 건 위선이다.

아무리 얼굴마담들을 영입하고 ‘파격’에 가까운 공약을 쏟아내도 진정성 없는 정책 약속은 공허할 뿐이다. 박근혜 지지율 하락의 본질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이택 논설위원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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