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대학 입시 전형이 몇 개나 되는지 아세요?”
중학생 자녀를 둔 취재원 ㄱ씨가 최근 내게 물었다. ‘직장맘’ 셋과 미혼 남성 한 명이 모인 자리였다. 일 얘기를 하다 직장맘들이 삼천포로 빠지더니 고충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교육 문제와 대선 얘기로까지 대화 소재가 확대됐다. 5살, 3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게 입시는 아직 먼 얘기다. “글쎄요”라고 말하는 내게 ㄱ씨가 답을 알려주는데, 과거 입시제도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ㄱ씨에 따르면 입시 전형은 3000개가 넘는다. 너무 다양해서 아이들도, 학교 선생님들도 입시 전형을 다 이해하기 어렵다. 선생님들조차 유명 입시 컨설턴트에게 수업을 받아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ㄱ씨는 “요즘 대학 입시는 예전처럼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착실히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부모들 평균 수준의 교육열을 갖고 있는 ㄱ씨는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가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ㄱ씨의 아이는 얼마 전 엄마에게 “○○대학에 가고 싶은데 입시 전형이 너무 어렵다”며 “엄마도 나한테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ㄱ씨 역시 그 전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미 입시를 목전에 둔 자신의 올케에게 전화로 물었다. ‘선배’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름 ‘입시 전문가’라는 그 올케가 했다는 대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올케는 ㄱ씨에게 “아가씨, 저도 그 대학 전형은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어요. 그냥 저 기도 열심히 하기로 했어요. 아가씨도 이제부터 교회 다니세요”라고 했단다. 이 얼마나 웃기고 황당한 소리인가.
3000가지가 넘는 다양한 방법으로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하지만, 학생과 선생님, 부모에게는 복잡한 대입 전형이 또다른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얼마나 복잡했으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이 있고, 아예 자포자기하고 기도에 전념하겠다는 부모가 생기느냐 말이다. 입시제도 문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어디 그뿐인가. 복잡한 전형도 모자라 일부 대학은 시험을 코앞에 두고 전형 방법을 바꿔 수험생들을 더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얼마 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 없는 세상’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각 대학은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971건의 입학전형 기준을 바꿨다. 이런 상황에서 돈 있는 부모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40분에 150만원이나 받는 유명 입시 컨설턴트에게로 달려가고, 돈 없는 서민들은 기도에 목을 매는 형국이다.
학벌 사회는 공고하고, 문제투성이 대입 제도는 부모와 선생님, 아이들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고 있다. 명문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부모들과 학생들은 그래도 명문대만이 살길이라며 불철주야 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많은 아이들은 좌절하고, 상처받고, 죽어간다. 선생님도 가르칠 권리를 빼앗기고, 입시 도우미의 역할을 강요받는다. 부모들은 돈 뜯기고, 기도에 매달리고, 불안 속에 살아간다.
대선이 이제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많은 국민들은 끝도 없는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길 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가 4년 연속 꼴찌인 이 나라가 부끄럽기만 하다. 대선 후보들이 제발 이 희망 없는 입시전쟁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낼 구체적인 교육 정책 대안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한다.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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