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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 어떻게 바꿀까 / 김류미

등록 2012-10-21 19:21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희망청이라는 조직을 통해 당사자 운동을 하겠다고 나섰던 몇년 전 이래로 나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나의 부족함 때문이기도 하고 비슷한 역할을 해주는 동세대의 인물들을 멀찍이서 지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할 만큼 현실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무자로서 당사자 운동의 역할은 매체에서 해당 이슈를 다룰 때 적당한 취재원을 연결해주는 일이 아닐까라는 회의를 느낀 적도 있었다. 88만원 세대라는 약발이 먹혔던 2009~2010년에는 잊을 만하면 청년 문제가 포털 메인과 주간지 특집을 장식했다. 당연한 결과인지 2012년에 치러진 총선에는 청년 정치인이 화제가 되었고 곧 치러질 대선에서 2030세대의 표심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등록금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과 생계 때문에 현장 용역으로 동원된 20대도 있겠지만 현실에는 그보다 많은 부동층 청년들이 있다. 내 살길도 찾기 힘든 인생들에게 왜 주변을 살펴보지 못하느냐고,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느냐고 무작정 탓해서는 안 된다. 현실 인식은 모두가 같지 않으며 늘 빠듯했다. 다만 계기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계기를 만들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없다. 이 세대에게 학교는 민주시민이라면 투표권을 행사하면 된다고 가르쳤고 지식인들은 어느 정당이든 가입해 정치에 적극 참여하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절차적 정의로 뽑힌 대통령의 현실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이며, 심지어 이번 대선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후보는 정당정치의 프레임 안에 있지 않다.

총선 즈음에는 이른바 2030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예비) 청년 정치인들이 여의도를 들락거리더니 최근에는 대선을 위한 움직임들이 보인다. 한편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속을 갖기 어려운 청년들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노조 등의 네트워크에 들어가기 어렵고 노조 또한 어떤 세대를 대변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 시대는 잠입할 현장도 들어갈 공장도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대나무숲’의 하소연과 약간의 축적된 경험뿐이다.

나는 늘 평범한 또래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과외 아르바이트 따위는 왠지 안일하게 느껴졌다. 몸을 쓰는 서비스업을 전전하며 계속해서 알바를 했던 것은 경제적인 필요가 컸지만 이 세대의 일반적인 경험들을 겪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다. 다양한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4인 이하 사업장까지를 오가며 직원 생활을 했고, 사무실 안에서 없는 사람 취급당하던 파트타임직에서 옆에 있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인사하는 일조차 망설여지는 정규직 생활까지도 해보았다. 극단적으로 많은 처지와 시선을 경험하려 했던 것은 이것이야말로 ‘보통사람들을 위한 언어’를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찾아내고 싶은 현장은 극적인 곳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사는 일상이었고 나는 이런 식의 필드의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참여관찰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분노였을까? 보편적인 언어를 찾지 못한 문제의식은 결국 시장에 자리를 내준다. 88만원 세대라는 문제제기가 결국 멘토 열풍이라는 달달한 감성으로 풀릴 수밖에 없던 것은 그래서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위한 현장과 이 세대를 위한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하는 때다.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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