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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농담도 정도껏 하시오, 검사양반! / 박가분

등록 2012-10-28 19:20

박가분 자유기고가
박가분 자유기고가
학과 구조조정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동국대에서 ‘표적징계’를 당한 진보적 활동가 김정도씨가 이번엔 검찰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표적수사’를 받게 되었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위트했다는 이유다. 지난날 박정근씨도 북한 체제를 희화화한 트위터의 멘션들(‘김정일 카섹스’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등등)과 우리민족끼리 계정을 리트위트한 행위 때문에 압수수색을 당하고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이에 대한 항의의 차원에서 여러 사람들이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위트했는데 그중에서 또다른 표적이 된 것이다. 지난 4월에도 권용석씨가 비슷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리트위트로 공안기관의 탄압을 받는 것은 자유민주국가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일로, 여러 외신들에 보도된 바 있다.

오늘날 반공 프레임 자체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자유분방한 경향에 대해 공안기관이 철퇴를 가하는 이유를 근본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무리한 수사의 이유는 그들이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해를 끼쳤서라기보다는 보안법 자체의 위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인터넷에 난무하는 각종 ‘고인드립’(서거한 전 대통령들을 희화화의 소재로 삼는 것)과 김정일과 북한 체제에 대한 농담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슨상님’이라 부르고 이명박을 ‘가카’라 부르며 은연중 조롱하는 것과 김정일을 ‘장군님’이라 부르며 희화화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정치적 엄숙주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징후다. 무엇이든 조롱할 수 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이라면 보안법이 수호한다고 하는 자유민주주의 아래서는 반공 프레임 역시 희화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안기관이 우려하는 것은 이처럼 반공프레임 자체가 ‘가벼워지는’ 상황 자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공론장의 억압 기제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자유주의적 논리는 무력한 듯하다. 되레 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가 지닌 구조적 ‘허점’을 명시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든 공론장에서의 암묵적 ‘금기’가 있기 마련이다. 조롱과 희화화가 난무하는 공론장에서도 암묵적인 ‘성역’이 존재한다. 심한 경우 그런 성역이 존재한다는 언급조차도 금기시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인종적 증오나 성차별적 발언이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기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허점’이 그 자체를 ‘지탱’하는 것이다. 즉 농담도 정도껏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공안기관의 무리한 수사도 규제되어야 할 과도한 농담 사례로 보인다. 농담의 특징은 합리적 논증이 먹히지 않는 담화라는 데 있다. 따라서 농담에서 어떤 의도를 추출해 처벌하긴 어렵다. 농담은 농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정근이 농담할 의도라고 해도 이를 인정하면 보안법은 사람의 의식을 처벌하는 악법이 되므로 박정근이 농담할 의도였든 뭐였든 처벌해야 한다’는 공안기관의 논리는 박정근, 권용석, 김정도가 행한 ‘농담’에 참여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런데 검사는 기소권이 있다. 이들이 그 권한을 남용하며 합리적 논증이 통하지 않는 담화를 구사하는 경향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 경우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해당 검사와 최고 책임자인 한상대 검찰총장은 언젠가 이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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