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9일치 <한겨레> 1면에 안기부 내부 비밀문건 하나가 실렸다. ‘오익제 편지사건 언론보도 실태 및 후속 대책’이란 제목의 문건은 97년 대선 직전 안기부가 벌인 북풍 공작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장 권영해는 월북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가 김대중 후보에게 편지를 보낸 사건을 이용해 용공 시비를 일으키기로 하고 자세한 공작 계획을 12월7일치로 작성된 이 문건에 담아놓았다. 12월6일 대공수사실장 고성진이 오익제 편지 전문을 공개했는데도 “언론이 ㅈ일보를 제외하고는 중립적 논조를 보여” 김대중 이미지 저하 효과가 의문시된다며 “대선일까지 색깔 공세를 지속 전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와 별도로 안기부 협조자인 윤홍준은 12월11일 중국 베이징에서 “김대중 후보가 김정일한테서 자금을 받았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반응이 신통치 않자 13일 일본 도쿄, 16일 서울에서 잇달아 회견을 했고 1주일 뒤 안기부 공작금 20만달러가 그에게 건네졌다.
이에 앞서 97년 10월엔 옛 여권 인사들이 베이징에서 북한쪽 인사들을 만나 판문점 안에서 총격 시위를 요청한 ‘총풍 사건’도 있었다.
유신 선포를 사전에 북한에 알려줬듯이, 역대 군사정권과 보수정권은 북한과의 연계선을 활용해 선거 때마다 ‘북풍’을 일으켜왔다. 97년 12월12일 오익제의 뜬금없는 평양방송 등장뿐 아니라, 총풍 때도 당시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보내는 북한 전문을 감청한 결과, 일부 유력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15년간 사라졌던 북풍이 다시 등장했다. 뜬금없이 터져나온 엔엘엘(NLL·북방한계선) 논란은 ‘신북풍’인 셈이다. 이번엔 주연을 바꿔, 돌연 안보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연평도를 방문한 엠비와 여당 후보가 정보기관 대신 직접 나섰다. 그러나 바람잡이 조연은 수십년째 그대로, 수구보수언론 몫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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