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신문사와 가까운 백범기념관에 가기 위해 공덕오거리에서 17번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평소와 달리 버스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짜증을 냈다. 한참 뒤 도착한 마을버스 운전기사는 “문재인 안철수 합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데모를 해서 길이 막힌다”고 했다.
백범기념관 앞에서 내리자 피켓을 든 젊은 사람들이 보였다.
‘국민과의 약속 꼭 지켜라.’
잠시 뒤 나이가 든 20여명이 피켓을 들고 몰려들었다.
‘야합정치 아웃, 구태정치 아웃’
용산경찰서 경찰관들이 막아섰다. 이들은 “야합정치 중단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누군가 “둘 다 빨갱이”라고 말했다.
오후 5시50분께 안철수 후보가 차에서 내렸다. 그는 유민영 대변인에게 “단일화한다니까 기자들이 많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악수를 하면서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또다시 “양쪽 기자들이 단일화되니까 대한민국 기자들이 다 온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이날 백범기념관에 모여든 기자들은 500~600명도 더 되는 것 같았다. 하나의 정치 이벤트를 취재하는 기자들 규모로는 사상 최대가 맞을 것이다. 종편과 인터넷 방송에서도 카메라를 여러 대 동원했다.
단독 회담이 끝나고 백범기념관을 떠나는 두 후보는 활짝 웃었다. 합의 결과를 놓고 양쪽 모두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나왔다. 새누리당은 기가 죽었다. 박근혜 후보는 다음날 “단일화 이벤트로 민생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날을 세워 비판했지만 별로 위력이 없어 보였다.
이제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약속한 대로 후보 등록 전에 무난히 단일화를 이뤄내고,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일만 남은 것일까? 그게 그렇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단일화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난제를 풀어야 한다.
우선 감동을 주기가 쉽지 않다. 두 후보는 합의문에서 정치혁신, 정권교체, 새 정치, 철학, 미래, 국민연대 등 가치지향적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새정치 공동선언문에서도 현란한 용어가 동원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종류의 정치적 수사에 감동하지 않는다. 정치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후보의 진정성에 매력을 느낄 뿐이다. 단일화 과정에서 두 후보가 이런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여론조사라는 단일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주권을 행사한다. 여론조사로 공직후보를 뽑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여론조사로 대통령을 뽑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차범위 안에서 승부가 나면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고민이 필요하다.
후보 단일화와 공동정부를 매개로 한 연대에 성공한다고 해도,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조사로는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박근혜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후보 단일화는 그 자체가 사실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솔로몬의 재판처럼 ‘아기를 살리기 위해 차라리 남에게 내줄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1987년 ‘정치 9단’이라는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단일화 안 하면 진다’는 상식을 배반하고 패배의 길을 걸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디제이피) 연대는 1년 이상 긴 시간 동안 지역등권론, 지역연합론, 연정 등 다양한 이론과 논리로 무장했는데도, 막판에 ‘야합’이라는 벽을 겨우 넘어설 수 있었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지면 안 한다’는 승부수를 던졌고, 정몽준 후보는 이긴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단일화 카드를 받아들였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와 양쪽의 참모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차분함이다. 당장 뭐가 다 된 것처럼 흥분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후보의 참모들은 역량이 떨어지고, 안철수 후보의 참모들은 진정성이 떨어진다. 겸손해야 한다. 실패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각오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뜻을 받들어 단일화 경로 도처에 도사린 위험 요소를 제거하며 나가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유’해야 할 때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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