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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지고도 이기는 패자 만들기 / 백기철

등록 2012-11-13 19:14

백기철 논설위원
백기철 논설위원
야권 단일화가 열흘간의 결정적 국면에 들어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쪽에선 제3의 방안이 있네, 여론조사+알파를 하네, 화끈하게 담판짓네 등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모두 양쪽 지지자를 한데 묶어 세우는 단일화를 하려는 고육책이다. 그런데 양쪽 책사들이 아무리 묘책을 짜내도 별 뾰족한 방안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최상의 단일화 방안은 간단하다. 둘 중에 아름다운 패자, 지고도 이기는 패자를 만드는 것이다. 승자를 결정하는 좋은 룰을 만드는 일은 쉽다. 하지만 훌륭한 패자를 만드는 일은 간단치 않다. 승자 독식의 한국 사회에서 한번 루저는 영원한 루저인 경우가 많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최대 맹점은 패자 정몽준이 명분도 실리도 잃은 채 루저 신세가 됐다는 점이다.

이번 단일화에서 훌륭한 패자, 다시 말해 대통령 후보는 못 됐지만 그 이상의 정치적·역사적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패자가 나온다면 한국 정치의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양김과 달리 한편의 아름다운 단일화 드라마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두 사람 모두 아름다운 패자가 될 조건과 이유가 충분하다.

문재인이 기반을 둔 ‘노무현 정치’는 진정성의 정치다. 국민만 보고 나아가는 단심의 정치다. 다소 못나고 미숙해서 실패했지만 그래도 노무현은 우리에게도 진정성 있는 지도자가 있었다, 죽음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한 정치인 한 명은 있었다는 위안을 주었다. 문재인의 아름다운 양보는 노무현 정치의 후속이자 완결판이 될 것이다.

안철수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보여줬듯 담대하게 양보함으로써 더 크게 이루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경제민주화와 정치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의 체현자 격인 안철수가 그 시대정신의 큰 바퀴가 굴러가는 데 밀알이 되고 불쏘시개가 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다. 자신을 비움으로써 더 커지는 것이 안철수식 정치다.

단일화의 요체는 결국 폼나는 승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비루한 패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누가 극적으로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아름답게 퇴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딱 부러지게 가진 것 없이 패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걸 거머쥔 듯한 패자가 필요하다. 패자가 정치적으로 현찰을 챙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민에게 마음의 빚을 얼마나 남기느냐가 그의 미래와 직결된다. 오갈 데 없는 초라한 패자를 낳는 단일화는 상대방 역시 옹색해지게 한다.

양쪽 책사들은 차라리 아름다운 패자가 나올 수 있는 온갖 방안을 연구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양쪽 지지자들이 양해할 수 있는 수준과 절차라면 담판도 나쁘지 않다. 경선이 불가피하다면 어느 정도 선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으면 최종 승자는 두 후보의 담판으로 결정하는 방법은 어떨까? 경선과 담판을 병행하는 것이다. 격차가 제법 크게 벌어질 때까지, 어느 한쪽이 충분히 승복할 때까지 경선과 담판을 반복할 수도 있다.

두 후보 모두 내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못지않게, 내가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패자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식, 또는 지난해 박원순-안철수 식의 단일화가 이번에 재현되리라 보긴 어렵다. 역사엔 반복이 없고, 정치에서 재탕은 식상하다. 어떤 방식이든 아름다운 단일화는 결국 두 후보가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주변에선 못 해주는 일이다. 경선이 됐든 담판이 됐든 승자보다는 패자의 자리를 먼저 챙겨주는 동병상련의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유권자들은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패배의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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