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자유기고가
지금까지 칼럼을 쓰면서 지나치게 딱딱한 주제만을 다뤄왔다는 생각이 든다. 건방지잖아라는 생각을 많은 독자분들에게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이번에는 젊은 사람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청년들의 감성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2030 칼럼난을 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호의에 대해서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작 청년 자신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청년 자신들이라는 사실이다. 청년이라는 계층이 국가와 민족, 계급 등등에 관한 시대적 소명을 강하게 의식하던 시절에는 그들 사이에 지역·학벌·성별·이해 및 관심사를 초월하는 어떤 공감 같은 것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 사이의 ‘차이’가 부각되는 것이며, 역으로 그들 사이의 어떤 공동성이라는 것은 단지 피로감, 환멸,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에서 발견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점이 어쩌면 기성세대가 청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성세대에게 청년 시절에 갖고 있던 공동성, 시대적 소명 같은 것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청년들에게는 (외견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묶고 있는 공통의 이해나 관심사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기성세대가 발견한 공동성이 혼란과 방향 상실, ‘자기 자신에 대한 위태로운 긍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공감과 연민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은 기성세대는 이미 한 번 거쳐 간 전혀 새롭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에게 멘토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쩌면 문제는 기성세대 자신도 제대로 된 멘토가 없는 청년기를 보낸 것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체화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위태로운 ‘긍정’으로 ‘도약’하면서 이루어지는데, 그때 도약의 발판이 되었던 것은 바로 엄혹한 시대 속에서 희생당한 타자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일부 청년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대다수 청년들은 바로 그러한 도약 지점이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청년들은 자신들이 윤리적인 관심사를 갖고서 연루되어야 할 타자와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기회를 박탈당한 희생자로 나타날수록 정작 어떠한 행동도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이념이 없는 무관심한 시대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도 청년으로 불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날의 또래 청년들 대다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감과 연민으로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서로의 차이를 돌파하고서 공동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자신이 흥미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감각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청년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대신 다소 과감하게 꼰대질(?)을 하는 어른들이 있어도 괜찮지 않나, 생각한다.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좀더 분명한 변혁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그런 멘토의 역할을 자임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와 같은 방식일 수는 없을 것이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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