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지난 화요일 밤 첫 대선후보 텔레비전 토론으로 이정희 후보가 화제다. 토론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에서부터 속이 시원하다는 찬사까지 반응이 다양하다. ‘지지율 0.7%에 휘둘린 토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라는 신문 제목도 보인다. 이 후보 자신은 “정말 답답한 분들 많으니까 그분들 말씀을 터놓고 말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이 후보의 직설이 품격이 있는지 또는 어느 쪽에 유리한지 따질 생각은 없다.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말의 가치는 얼마나 참되며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는가, 검증에 충실한가를 기준으로 볼 일이다.
다카키 마사오가 검색어 1위에 오르고 박 후보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현찰 6억원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당연히 모든 유권자의 검증을 받아야 하지만 그만큼 드러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엊그제 한 모임에서도 “6억원이 무슨 이야기야, 지금 돈으로 얼마지”라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고 ‘전두환 장물 6억원’을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람은 더욱 많은 듯하다. 나이가 들거나 생활이 바쁜 사람들 중에는 신문을 보지 않고 인터넷과도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정치적 식견은 텔레비전과 이웃의 전언이라는 폐쇄회로 속에서 굳게 형성된다.
공중파 방송은 정치인의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알에서 막 태어난 새끼 거위는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여기는 각인효과가 있다. 정치 이미지는 그처럼 한번 만들어지면 바뀌기 어렵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건 머리에 든 생각이 아니라 감성이며, 유권자들은 정책 같은 복잡한 정보보다 이미지 정보를 편리하게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영향력이 지대하며 국민의 눈과 귀가 돼야 할 방송이 정권에 장악돼 있다는 데 있다. 다카키 마사오나 6억원이 근래 처음 공중파를 타다시피 한 것은 이미지 조작·왜곡으로 실체와 동떨어진 이미지를 구축해왔음을 뜻한다. 공중파는 박 후보의 이미지 메이킹에 철저히 복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틀어막았다. 검증은 야권의 정치공세로 매도하고 감싸기에 급급했다.
지난 11월15~21일 공중파 메인뉴스 조사에서 대선이 코앞인데도 대선 뉴스는 다 합쳐 4분30초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마저도 후보의 유세지역을 따라다니거나 후보 간의 갈등을 단순 중계보도 식으로 비춰주는 데 그쳤다. ‘호떡 사먹는 박 후보’ ‘애니팡 점수 4000점’ 식의 보도로 대선을 너무나 가볍고 얄팍한 선거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박 후보의 ‘단독’ 토론에서는 민감한 질문은 쏙 빼고 미리 작성된 대본에 따라 어느 부분에서 옷을 가다듬고 어느 부분에서 눈시울을 적실지 사회자가 호흡을 맞췄다고 한다.
얼굴의 잡티까지 잡아주는 고화질 텔레비전 기술을 구가하면서 정작 중요한 검증 절차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제치고 불편한 진실은 묻어버린 것이다. 홍성담 화백이 논란이 된 출산 그림을 내놓은 것도 온갖 언설이 난무하지만 실체와 이미지 사이의 괴리를 누구보다도 직시했기에, 그 고통을 예술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듯 나는 자연스레 점령군에 장악된 방송의 마이크를 잠시 탈취한 잔 다르크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정희 후보는 이미지를 조작하는 바보상자와 그 배후세력에 진실의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점령군과 방송사는 전열을 가다듬겠지만 마이크 탈취 사건이 두 차례 더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만인 환시리의 엄청난 ‘방송사고’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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