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가분 자유기고가
대선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 50대와 60대의 투표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 주목받고 있다. 젊은이들의 투표율 역시 상승했지만 이들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60대에 비해 뒤진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점점 두터워질 고령 유권자층이 선거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율 상승이 보수정당한테 불리하다는 통념이 깨졌다. ‘안정적인 변화’를 바라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이번 선거를 주도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일부 보수파가 5060 ‘선거혁명’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번 대선에서 다수의 유권자들이 역사의 퇴행이나 후퇴를 의도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다수파의 선택은 보편 복지가 아닌 선별 복지, 분배보다는 성장, 급진적 구조개혁보다는 안정적 위기관리를 선호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독재에 대한 향수보다는 한국 사회가 구조적 위기에 부딪혔다는 것과 한국 사회의 재생산 동력 자체가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위기감에 대한 반응에 가깝다. 새누리당 역시 나름대로 변화-복지, 사회통합, 약자에 대한 배려-를 수용하되 기존 사회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는다는 정책과 방향성을 내세웠으며 이것이 다수의 중장년층에 어필했다.
그리고 이제 기존 진보적 세대담론을 재고할 시점이 도래했다. 지금까지의 세대담론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88만원 세대’로 표상되는 불안정한 젊은이들의 항의와 분노를 부각시킨 다음, 이들이 앞으로의 선거에서 권력교체의 새로운 주체로 드러나고 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현실은 점점 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선거와 같은 정치적 이벤트의 ‘진앙지’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젊은이들의 발언과 목소리가 기성세대와 사회 주도층에 어떤 공감과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는 구조로 한국 사회가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처럼 자의식이 강한 소수 젊은이들의 소란스런 반란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를 진단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좀더 급진적인 재분배와 복지정책으로 한국 사회의 위기를 돌파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과 안정적인 위기관리를 선호하는 기성세대는 실상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군사독재 시절부터 민주화를 거치고 아이엠에프(IMF)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을 거쳐 지금의 금융위기 국면까지 수많은 역사적 질곡을 겪어온 50~60대들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괴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그들은 섣부른(?) 정치경제적 구조개혁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젊은이들보다 더 잘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사회적 연대망의 부재다. 자본이라는 괴물과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보다는 그것에 올라탄 채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편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승부로 얻게 될 상처와 손실을 공유할 수 있는 연대망이 없다고 느끼며 나아가 그 자체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신과 회의감은 젊은이들도 공유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오도된 세대대결 의식을 부추긴 세대담론과 이를 수용한 이들도 책임이 있다. 만일 선거에서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50~60대를 분명하게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똑같이 늙어가게 될 것이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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