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연 상임고문단회의에 10여분 먼저 도착해 고문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복덕방·노인정은 보수강경파 독무대
진보 생활논객 못 키우면 희망 없어
복덕방·노인정은 보수강경파 독무대
진보 생활논객 못 키우면 희망 없어
“자네, 나 좀 보세. 연말 선거 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네. 젊은 사람들은 안철수를 좋아하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지난해 8월 경북 상주의 한 시골마을인 고향을 찾았을 때였다.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김 할아버지(88)가 마을 어귀에서 정치부 기자를 불러세워놓고는 박근혜 대통령론을 역설했다. 자신의 정치 강연에 대해 가타부타 반응 없이 듣기만 하자, 그는 “이 나라가 어떻게 발전했는데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철이 없다”면서 언성을 높였다. 정치권 돌아가는 얘기나 전망 등을 듣고 싶어하던 과거 태도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아저씨, 안철수는 연말 대선에 나오겠죠? 안철수와 민주당 후보가 단일화하면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엠비가 워낙 인기가 없잖아요.”
지난 7월 서울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친구의 중3 아들(15)이 똘망지게 말했다. 이 녀석도 정치판 돌아가는 소식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녀석은 아빠를 따라 지난 3년간 중부 아프리카에서 지낸 뒤 당시 막 귀국한 참이었다. 친구는 “얘는 아프리카에 있을 때 나꼼수를 매회 내려받아서 다 들었지. 지금은 나보다 정치 뉴스를 더 많이, 또 깊이 안다네”라면서 허허 웃었다.
돌이켜보면 이 두 장면은 2012년 대선을 상징하는 듯하다. 18대 대선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인 세대대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청년층의 야당 후보 쏠림은 10년 전인 2002년 대선 때보다도 더 강해졌다. 20대만 보더라도 투표율은 56.5%(2002년)에서 65.2%(2012년)로 8.7%포인트, 야당 후보 지지율은 59.0%에서 65.8%로 6.8%포인트가 올랐다. 변화에 대한 청년층의 갈망과 정치 각성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년층의 야당 성향화는 나꼼수를 비롯한 각종 팟캐스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등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생도 팬이 될 정도의 쉬운 언어로 재미있게 정치를 설명함으로써 정치를 외면해온 젊은층을 단기간에 정치 주체로 변화시킨 것이다.
반면에 50대 이상 노년층의 여당 성향화 역시 눈부시다. 이들은 이제 과거처럼 ‘깬’ 자녀들의 안내대로 한 표를 던지는 손쉬운 포섭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수는 김 할아버지처럼 자기 확신을 지닌 ‘노인 전사’로 탈바꿈했다. 노년층의 이런 변화는 종편 등 24시간 방송 채널의 등장과 연관이 깊다. 서울 지역의 새누리당 한 재선 의원은 “은퇴한 장년층들은 종편 등의 시사 프로그램을 종일 본다. 그래서 완전히 우경화됐다. 이들을 섣불리 설득하려 했다가는 큰코다친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정치의식 강화로 일상생활의 모습이 바뀐 것은 거의 없지만, 우경화된 장년층의 등장은 생활 터전인 골목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동네 사랑방인 복덕방이나 노인정, 찜질방은 보수 강경파 노인들의 독무대가 됐다. 팔순이 가까운 노모를 통해 가끔 듣는 아파트 경로당의 분위기도 똑같다. 야당이 강한 가난한 동네임에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북한에 또 퍼주기 한다. 이정희 때문에 박근혜를 찍어야 한다’는 등의 여당 정치선전이 노인정 담론을 주도했다. 여기에 반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대선에 패배한 민주통합당이 9일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출하기로 하는 등 전열 재정비에 한창이다. 친노가 물러나고 비노 쪽 인사가 맡아서 당을 잘 수습하면 5년 뒤가 보장될까? 안철수 영입이나 진보세력과의 합체 등 야권 재편이 되면 미래 비전이 있을까?
안 하는 것보다야 도움이 되겠지만, 갈수록 기울어지는 ‘골목 정치’ 환경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면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도 별 희망이 없다.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청년들과 달리 골목 안에 사는 노년층과 장년층에게는 에스엔에스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는 골목 정치가 필요하다. 동네의 보수 정치꾼들과 얼굴을 맞대고 논쟁을 벌일 생활의 진보 논객들이 있어야 한다. 각종 동네 사랑방에서 ‘왜 북한과의 교류가 퍼주기가 아닌지, 이정희와 문재인이 어떻게 다른지’를 반박하고, 진보가 실생활에 얼마나 큰 이익과 도움이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활정치다. 동네 논객인 풀뿌리 당원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재교육해야 한다. 소멸되고 있는 뿌리를 방치한 채 상부조직과 얼굴만 예쁘게 꾸민다고 될 일이 아니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관련 영상] ‘멘붕 선거’ 치유법(김뉴타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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