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먹거리다. 신선하고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도록 장을 보고, 제철 과일과 채소는 반드시 먹인다. 반면 맛있고 값은 저렴하지만 건강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가공 식품은 아예 밥상에 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아이들 먹거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건강·육아 분야를 취재하면서 수많은 의사·한의사들에게서 먹거리의 중요성을 마르고 닳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했으며, 허준은 한의학의 고전인 <동의보감>에서 좋은 음식은 약과 같다(약식동원)고 했다. 특히 어린 시절 무엇을 먹고 어떤 입맛에 길들여지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 입맛은 쉽게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평생 건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가 최근 올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보육원 등 아동양육시설의 아동들에게 먹일 한 끼 급식비를 1520원으로 결정했다. 기존 1420원에서 고작 100원을 올렸다. 예산안을 처리하기 전, 급식비 단가가 너무 낮으니 저소득층 아동 한 끼 급식비인 3500원과 동일하게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런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차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중한 아이들의 건강권이 간단히 무시된 것이다. “제일 맛있는 음식은 라면”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현실이 암담하기만 하다. 국회의 이번 결정으로 전국 1만6000여명의 시설 아이들은 올해도 국내산 고기보다는 값싼 수입산 고기를, 신선한 생선보다는 냉동 생선을 먹어야 한다. 급식비에 맞추려면 값싼 인스턴트 식품과 가공식품을 피할 길이 없다. 이런 음식이 아이들 건강에 좋을 리도 만무하다.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은 “달성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향유하는 것은 인종, 종교, 정치적 입장, 경제적·사회적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의 기본적 권리 중 하나”라고 선언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함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먹거리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라 할 시설 아이들의 경우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 나아가 이들의 기본권을 잘 지켜주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역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학 교수는 저서 <건강 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에서 “불평등은 사회구조를 약화시키고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해치며 범죄율과 폭력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시설 아이들의 급식비 인상 문제가 단순히 식비 인상이나 시설 지원을 늘리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들에게 질 낮은 급식을 제공하면,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회문제와 건강문제는 다시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국회는 이번 예산안 심사에서 65살 이상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매달 120만원씩 연금을 주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 돈이 무려 128억2600만원이나 된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노후대비를 위해 똘똘 뭉쳤다. ‘특권 없는 국회’, ‘국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자신들의 특권은 지키면서 아이들의 기본권을 무시한 국회의원들이 과연 국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국민이 정치 쇄신을 요구하며 지켜보고 있다. 국회는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이 누구에게서 비롯됐는지 다시 되돌아보라.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anmada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김여진 “문재인 캠프와 관련있다고 ‘출연금지’”
■ 인수위 첫 회의 “보안 어기면 책임 묻는다”
■ 조성민 마지막 말 “한국서 살길 없어”
■ 40대, 학교 드라마에 빠진 이유
■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결정문 보니 “명박산성 합헌…”
■ ‘막말 궁지’ 윤창중, 공세로 전환?
■ 전직 지방공무원이 아파트 29채…
■ 김여진 “문재인 캠프와 관련있다고 ‘출연금지’”
■ 인수위 첫 회의 “보안 어기면 책임 묻는다”
■ 조성민 마지막 말 “한국서 살길 없어”
■ 40대, 학교 드라마에 빠진 이유
■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 결정문 보니 “명박산성 합헌…”
■ ‘막말 궁지’ 윤창중, 공세로 전환?
■ 전직 지방공무원이 아파트 29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