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논설위원
야권이 대선 패배를 놓고 뒤늦게 백가쟁명식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좌회전 논쟁도 그중 하나다. 누구는 좌회전해서 졌다 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한다. 중도로 가서 중원을 잡아야 하는데 왼쪽으로 너무 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근혜도 좌회전해서 이겼는데, 야권이 좌회전해서 졌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 총선 때 국민은 ‘닥치고 좌회전’하라고 주문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한결같이 주문했다. 박근혜가 좀 더 믿음직스럽게, 방어운전형 좌회전을 할 것 같으니까 국민이 표를 더 준 것이다.
야권이 지난 대선, 총선에서 패배한 것은 ‘얼치기’ 좌회전을 한 탓이다. 제대로 된 좌회전, 믿음직한 좌회전을 하지 못했다. 이념에 갇힌 좌회전, 진영 논리에 갇힌 화석화된 정책, 자기만족적인 정책과 노선이 문제였다. 중도, 중원을 향해 우향우를 못해서 진 게 아니다. 중원 자체가 왼쪽으로 급격히 이동해 있는데, 우향우를 하는 건 제 무덤을 파는 꼴이다.
좌회전해서 졌으니 이젠 우회전해서 중도, 중도자유주의로 가자고 하는 건 시대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자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걸로는 안 되니까 그냥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하수에 가깝다. 민생을 살피는 길에 중도는 없다. 다만 그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완급의 조절, 주체의 형성, 현실 적합성 있는 정책의 개발 등이 필요할 뿐이다. 어렵더라도 새 길을 개척해야지, 과거로 돌아가자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
중도로 가자는 게 어떤 정치적 복선을 깔고 얘기한다면 더욱 위험하다. 대선, 총선 과정에서 아무런 창조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뒷짐만 지고 있다가 이제 와서 한자리해 보겠다며 내세우는 궁색한 논리라면 곤란하다. 국민은 중도가 갖는 애매모호함, 권력의 미사여구적 속성을 잘 안다. 중도는 시대에 맞지 않는 흘러간 노래다.
야권이 가야 할 길은 아마도 좌회전, 우회전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다른 차원의 길일 것이다. 그 길은 현실적합성 있는 좌회전, 유연한 좌회전과 맞닿아 있다. 대책 없이 우회전하는 건 패퇴하는 길이다. 제3의 길, 생활정치, 작은 정치는 있을지 몰라도 중도는 없다.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선 지금까지의 얼치기 좌회전을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걸 허물고 바닥에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정책도 다 내려놓고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틀렸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국민 앞에 선언하고 죽기살기로 해야 한다. 할 수도 없으면서 괜히 폼으로, 국민이 믿지도 않을 약속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
나라를 바꾸는 문제는 무슨 영화 동호회나 버스 타기 모임과는 다르다. 영화를 보고 공분하고 버스 타고 연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 동력으로 사회는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정책적 차원에서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국민과 널리 호흡하면서도 완급을 조절하며 창조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지도자와 정당의 몫이다.
한번 정책이 잡히면 시종일관 묵묵히 그 길을 감으로써 신뢰를 쌓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현란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추진 주체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난 대선은 잘 보여줬다. 신뢰를 얻기 위해선 작은 정치, 생활정치를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작은 신뢰를 쌓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큰 담론, 큰 방향의 옳고 그름은 탁상공론으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 정책이나 행정, 구체적인 사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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