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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밤과 낮 / 김사과

등록 2013-03-24 19:23

김사과 작가
김사과 작가
내 미술 취향은 구식이다. 미술관에 가면 대체로 중세와 바로크에 머물며 인상파를 통째로 건너뛴 다음 뒤샹 이후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전시실을 가로지른다. 그러던 내가 현대미술에 약간의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런던의 현대미술관에서였는데 데이미언 허스트가 특별히 마음을 끌었다. 하얀 띠가 둘러진 사각상자,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잠긴 작은 양은 묘하게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방부처리된, 지극히 규격화한 죽음. 반영구적으로 일시중지된, 지극히 현대적인 죽음. 그렇다. 거기엔 죽음이 있었다. 죽음은 여전히 인간에게 확고한 사실이며 한계이자 동시에 평화이고 또 희망이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에 대해 종종 잊는다. 아니 그것은 대체로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합의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까먹고 말았다. 그 결과 죽음에 맞닥뜨릴 때마다 사람들은 당황하여 괴상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는데, 혹은 굉장히 복잡하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만 그것과 대면하고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굳이 영국까지 가서 방부용액에 잠긴 귀여운 양을 보며 감동하는 식.

그렇게 죽음에 관한 현대식 고찰이 끝난 뒤 우리가 돌아오게 되는 곳은 역시 지극히 현대적인 삶이다. 현대식 삶은 현대식 죽음만큼이나 규격화되어 있으며 반영구적이고 방부제 냄새가 난다. 넓게 펼쳐진 풀밭을 거닐던 건강한 소의 고기로 만든 갈비찜과 무농약의 제철 과일로 식단을 구성한다고 해서 현대식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아니 그 식단만큼이나 현대 삶의 논리를 따르는 것도 없다. 모든 해로운 것이 제거된 음식을 통한 신체와 정신의 부드러운 관리에 의해 우리가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곳은 물론 건강과 행복이다. 건강과 행복, 그것은 소에게도 딸기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인간들에게 중요하다. 아니 그것은 우리 삶의 지상목표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행과 병을 배척한다. 아픈 신체와 병적인 정신을 기피한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에서 흘러나오는 축제의 음악을 사랑한다. 그렇게 우리는, 낮에 취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백야에도 끝이 있다.

현대인의 삶에 관한 광적인 집착은 죽음에 관한 어찌할 바 모르는 태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삶에서 죽음을 밀어내려 할수록 그것은 더욱 파멸적인 형태로 돌아온다. 그것은 대체로 추악하고 가끔은 잊을 수 없게 아름답다. 그리하여 그것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거나 엄청난 가격에 팔려나간다. 사람들은 그것을 혐오하고, 동시에 매혹당한다. 그렇게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우리를 죽음의 핵심으로 인도하고 만다. 이것은 삶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완벽한 삶에 매달리지만 그럴수록 삶에서 구역질을 느낀다. 그것을 꽉 움켜잡을수록 그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세계는, 밤과 낮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단조로운 명도의 세계를 벗어나 채도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미래에 관해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이르든, 그토록 바라던 해방 뒤에도 밤과 낮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아니 밤과 낮이 존재하는 한에서 우리는 인간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을 지워버리겠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과연 우리는 그것을 원하는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우리에게 고통인가? 언젠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김사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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