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검찰총장들의 운명은 정권과의 관계에서 갈렸다.
2대 김익진 검찰총장은 정권과 가장 격렬하게 맞선 사례로 꼽힌다. 일제 때 판사와 변호사를 지내다 해방 뒤 대법관을 거쳐 검찰총장에 오른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압력을 철저히 뿌리쳤다. 대통령 재가 아래 사설 수사기관을 만들고 고문으로 공산당 사건을 조작하려던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에 대해 “기소하지 말라”는 대통령 친서도 무시하고 관련자 108명을 검거해 11명을 기소해버렸다. 악명 높은 일제 고문경찰을 비호하던 수도경찰청장을 체포하라고 지시하는 등 대통령을 자극하는 일도 이어졌다. 결국 재임 1년 만에 검찰총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전무후무한 좌천 인사를 당했다. 이어 1952년 6월 피난지 부산에서 발생한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 연루 혐의를 뒤집어쓰고 기소될 정도로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다.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1대 신직수 검찰총장은 정권의 충복 노릇을 톡톡히 해낸 대표적 사례다. 군법무관 임용 시험으로 군에 들어간 그는 5사단장 법무참모로 박정희와 맺은 인연으로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36살 새파란 나이에 검찰총장에 올랐다. 정권이 검찰을 법무참모 정도로 여겼음을 잘 보여준다. 8년간의 최장수 총장을 거쳐 법무부 장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했다. 중정부장으로 있던 74년 훗날 고문 조작으로 드러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만들어 내는 등 정권 보위에 총대를 멨다.
역대 총장들은 ‘김익진형’과 ‘신직수형’ 사이에서 대부분 후자에 가까웠다. 특히 이명박 정권 들어 ‘정치검찰’이란 별명이 굳어진 건 어용 총장들의 해바라기성 처신 탓이 크다.
39대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최근 행태를 보면 그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