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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멘토의 몰락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 / 김류미

등록 2013-04-14 19:11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생각해보면 자신들의 꿈을 이뤄가는 멋진 주인공들이 나오는 만화에 부모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아이거나,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살다가 천재성을 알아봐주는 ‘좋은 어른’을 만나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설령 부모가 등장하더라도,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의 벽’으로 상징되거나, 현실에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일 뿐이다. 영웅 설화와는 또 다른 현대판 ‘만화 주인공의 자격’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멘토들의 몰락’을 보면, 멘토를 소비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끝없이 대상을 바꿔가며 멘토를 교체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동의하게 된다. 이건 정말 한심할 정도로 어이없는 일인데,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원조 격인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가 2004년 출간되었을 때 ‘제법 유명한 인디밴드의 리더이자 멋진 문화 생산자’에게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이 과연 “네 꿈을 이렇게 찾으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청춘 꼰대질’이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이것은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 시기 웹에서 돌아다니던 그의 글들에 청춘들이 열광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는 이외수다. 이런 상황에서는 <88만원 세대>를 쓴 당사자도, 그들의 언어를 찾으러 온 선생님도 모두 ‘멘토’로 등극해버린다.

혹자는 가까운 곳에서 멘토를 찾으라고 말한다. ‘부모’를 말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지옥 같은 입시 제도에서 10대를 살아내면, 부모와의 관계가 트라우마가 된다. 20대는 위세를 잃는 부모와 돈을 벌며 경제력을 획득한 자녀 세대가 경제적 관계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마저도 갈수록 늦어져서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 특유의 권위와 보수성, 가부장제 덕분에 ‘아버지를 극복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인 딸들이 넘쳐나고, 물리적으로 아버지보다 힘이 세지고서야 독립할 수 있었던 아들들이 모여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고백한다. 부모가 멘토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이들을 만나면, 나는 정말이지 ‘정말로 훌륭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났다’는 부러운 생각이 먼저 들 정도다.

부모의 사는 모습과 부모의 요구를 비교해본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일상의 ‘멘토’ 자격을 부모에게서 발견하지 못한다. 권위는 교재 강매나 멘토질을 가장한 훈계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모습에서 존경심은 생겨난다. 정치평론가인 한윤형이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지적하듯, 20대의 부모들이 ‘남의 애들은 눈 안 낮춰 중소기업 취업난이 문제지만 내 자식만큼은 대기업 정규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다. 젊은 세대의 출산 파업은 ‘내 애를 낳아 키울 여유와 부모를 부양할 수 있을 가능성’ 사이 줄타기에서 부모를 선택하는 눈물나는 결말이다.

한국 사회는 타자를 이해하는 데 서투르다. 그 결과는 피상적으로 대상을 이해하고 누구나 할 법한 말로 누군가 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멘토의 범람’이다. 상대를 하나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할 때, 소통은 오해를 만들고 일상 밖에서 멘토를 찾고 싶어한다. 그것만이 유일한 소통 방식이라고밖에 배우지 못했고, 무엇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거나 가르치지 못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한다. 톨레랑스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화두였다면, 이제 그 전제가 되는 ‘상대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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