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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중도’ 민주당? / 김이택

등록 2013-04-18 19:43수정 2013-04-19 08:38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집권 전 야당 시절 디제이의 정치철학을 ‘코란과 칼과 알사탕’에 비유하곤 했다. 당시로선 상대적으로 앞서가던 정치노선과 배신을 용납하지 않는 규율, 조직관리와 선거용으로 나눠주던 정치자금을 이렇게 요약했다. 중소기업 중심의 대중경제와 남북화해의 햇볕정책 등에 정치노선의 독창성이 담겨 있다. 70년대부터 갈고닦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외환위기로 대중경제는 시장경제로 퇴색하고 말았으나 디제이 철학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민주당 강령에 남아 있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는 최근 360쪽짜리 평가보고서를 내놓았다. 편파성 논란도 있지만 방대한 여론조사 등 가치있는 객관적 자료들이 꽤 있다. 국민과 당내 인사들의 60~80%가 후보 개인보다 계파갈등이나 조직혼선, 정책미비 등 당에 더 문제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잦은 지도부 교체에다, 유고시 대비 규정도 없고,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선거 때만 나타나는 ‘휴면정당’이었으니 결국 ‘근대적 관료제에 미달하는 기구’라고 진단했다. 이대로면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감이 있어도 안에서 망가지고 말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경고를 담고 있다.

당의 문제는 정체성과 진정성의 위기 두 가지로 압축된다. 정체성 위기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내내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지금은 20:80도 아닌 1:99 사회라고 할 정도로 격차가 더 커졌다. 디제이 시대의 철학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문제가 심각·복잡해졌는데도 민주당은 설득력 있는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 짝퉁 경제민주화, 짝퉁 복지에 밀린 것도, 말한 대로 약속을 지킬지 민주당이 믿음을 주지 못한 탓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를 놓고 오락가락한 게 단적인 예다. 이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질문들에도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면, 보편복지를 하겠다는데 ‘증세’ 주장을 넘어 지속가능한 실천 방안은 갖고 있는가, 저성장 위기론에 맞서 재벌개혁과 ‘노동권’을 관철할 논리와 청사진은 있는가, 핵을 가진 북한에도 통할 수 있는 포용정책 2.0은 만들어놓았는가 등등.

진정성의 위기는 사람의 문제다. 계파 갈등이 심각한 것도 대의명분과 소명의식 없이 자리와 이권만 노리는 저급한 정객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등 해고노동자 문제가 여전히 겉돌고 해직기자들이 복귀하지 못하는 것도 제1야당의 진정성이 부족한 탓이 크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사실상 권력을 반분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는데도 민생현안을 다루는 데 절실함이 안 보인다. “민주당 정치인 중 상당수가 소명으로서의 정치보다는 생계형 정치 쪽으로 돌아선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는 은수미 의원(<프레시안> 인터뷰)의 지적을 부인할 수 있을까.

평가보고서는 결론에서 디제이 정신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개혁이라며 이 뿌리를 복원하라고 제안했다. 최근 당 강령의 중도 선회를 검토한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디제이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1:99 시대가 요구하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 다시 ‘미달 정당’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보고서가 당 소속 민주정책연구원을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기구로 제대로 만들라고 제안한 건 정확한 진단이다. 미국 뉴딜 시대의 브루킹스연구소, 영국 노동당 정권 탈환의 토대가 된 사회정의위원회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 당 정체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강령 고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김이택 논설위원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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