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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한 세기의 끝 / 김사과

등록 2013-04-21 19:04

김사과 작가
김사과 작가
산문문학으로서 소설의 핵심은 그 상스러움(vulgarity)에 있다. 소설은 무엇보다도 세속적인 예술이다. 그것은 시작부터 패러디이자 아이러니였고, 미친듯이 찍어내어 시장통에 풀리는 끝내주게 재밌는 이야기였다. 세르반테스가 그랬고, 디킨스가 그랬고, 사드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그것은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을 기반에 둔 대중문화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물론 그와 반대의, 순수하고 고립되어 있으며 거의 시에 가까운 소설 또한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소설을 ‘시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시적인 소설은 결코 시가 아니다. 그리고 시는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장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시쓰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평범해지는 민주주의의 시대에 고귀함, 신성 같은 개념은 더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술은 신적인 것을 떠나 자연물로, 종국에는 인간, 우리 자신으로 향한다. 우리, 하나하나의 인간들, 사소하고 하찮지만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왜냐하면 모든 것이 비슷하게 평범해지는 시기에는 가만히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세계의 보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상과 천하 사이에 놓이고,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관심을 멈춘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을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가꾸어 나갈 때, 많은 오래된 아름다움이 존재하기를 멈춘다. 그리고 그것은 딱히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토크빌은 또한 말했다. 고귀함과 비참함이 극적으로 공존하는 신분제 사회에서 가능한 탁월한 아름다움 대신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의 고만고만하게 평범한, 속세적인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세계 속에서는 시뿐 아니라 소설조차 존재하는 것이 버거워진다. “너덜너덜한 지도, 망가진 여행 책자, 낡은 타이어에 불과”하다고 소설가 나보코프가 말했던, 거대한 평균치의 세계-통계로서만 파악 가능한 꿈으로서의 이십세기. 그리하여 많은 현대 소설가들은 소설가보다는 저널리스트에 가까워졌다. 실제로 <중력의 무지개>나 <언더월드>와 같이 일정한 성취를 이룬 이십세기 후반의 많은 소설들이 넘쳐흐르는 평균치, 곧 통계와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돌을 일년 남짓 앞두고 있는 21세기, 위와 같은 내용을 생각하다 보면 정말이지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랭보의 한 구절을 패러디하자면, 평범함은 21세기적이지 않다. 평균치와 통계, 대중 전체가 붕괴 중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정보는 통계를 농락한다. 더는 해석에 반대할 필요도 없이 어떤 해석도 불가능하다. 저널리즘은 오래전에 단념되었고 소설은 어떤 것도 표상하지 못한다. 한편 어느 때보다 가난해진 인간들에게 남은 것은 ‘리트위트’와 ‘좋아요’ 두 가지 종류의 의사표시뿐이다. 모든 종류의 의미체계가 잊혀 가는 가운데 사람들은 일종의 텅 빈 관이 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정보를 더 적은 손실 속에서 교환하기 위한 스마트한 플랫폼으로서의 인간. 상황은 이렇게 흥미진진해지고 있는데 파국이나 종말 따위는 찾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가 그려 보였듯, 천국과 지옥이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시를 갖게 될 것인가.

김사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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