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주 5일을 근무하는 직장인인 나는 토요일에 쉰다. 그러나 자영업자에 가까운 어머니, 블루칼라 노동자에 가까운 아버지, 지금은 군대에 갔지만 집에 있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동생까지 모두 토요일에 ‘일’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작은 회사지만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기 전까지는 토요일에 일을 했다.
“남들이 놀 때 같이 논다는 게, 대단한 거야”라고 동대문 시장 언니들은 말했다. 일반 기업들이 ‘비즈니스 일’을 계산하는 것과 다르게, 동대문 옷가게들한테 주말은 평일의 2배에 가까운 매출을 찍어줬다. 편의점은 ‘남들이 잘 때도 가게 문을 닫아서는 안 되는 업장’이다. 이건 본사의 영업 방침인데, 실제로 이것 때문에 많은 가정들이 파탄에 이른다. 야간 할증 ‘알바비’를 아끼기 위해 점주 부부들이 돌아가면서 가게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일했던 가게의 점주 언니는 대타를 구할 수 없는 상태로 몸이 아파서 일하다가 편의점 셔터를 내렸는데, 인근 주민이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경찰들은 찾아와 “처벌 대상은 아닌데…”라며 경고를 주었고, 나는 신고한 주민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들의 눈에는 일하는 ‘한 명의 사람’은 보이지 않고 ‘24시간 불 켜진 편의점’만 보이는 것 같았다. 공부방(이건 이름만 공부방이지 그냥 저가형 보습학원이다)에서 일할 때는 ‘추석 연휴’를 이용해 아이들에게 ‘중간고사 필승 대비반 체제’로 하루 6시간의 수업 지도를 해야 했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는 물류업체나 마트에서는 ‘비상 알바’가 넘쳐나고, 주말이면 명동, 강남의 가장 혼잡한 길거리에서 광고 간판을 들고 있어야 하는 청춘들이 늘어난다.
노동절에 노는 직장인을 위해 누군가는 일을 한다. ‘진짜 노동자’는 누구인가? 대기업 정규직은 하루를 쉬지만, 정말 노동 현실의 개선이 당장 필요한 업종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일을 해야 한다. 집회도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이다. 그래서 ‘대기업 정규직’은 이제 스스로 ‘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이미 스스로를 노동자보다 근로자, 근로자보다 회사원, 직장인으로 부르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사실상 생산직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기업 정규직들이 피해버린 ‘과거의 노동자’의 포지션은 오늘날의 ‘서비스업 종사자’다. 그들은 ‘화이트칼라’를 입고 있는 ‘직장인’들의 리프레시를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백화점에서, 지하철에서, 주차장에서, 식당에서 일을 한다.
문제는 그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이다. 대다수는 취업 약자로, 임시직을 전전하는 20, 30대 청년들, 노동시장에서 사실상 경력이 단절된 주부 사원, 실버 취업자다. 우리는 맥도날드에서 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있다. 한편 40대에 정년을 맞아버린 ‘근로자’들은 자영업의 부품과 같은 점주가 되어 그 자신이 누렸던 ‘노동절’을 누리지 못하는 중년 이후의 삶을 보내야 한다. 앞으로도 시장에 의해 ‘노동절’에 쉬지 못하는 노동자는 늘어날 것이다.
최저 시급 1만원을 외치는 ‘알바연대’의 목소리는 점주보다는 본사를 향한 것이다. 정년 연장 법안의 통과가 청년층 신규 채용을 더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추석과 설의 대체 휴일을 쓰게 해달라는 대체휴일제 도입도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시장이 노동자들을 구분하더라도 사회는, 우리는 언제나 ‘노동절에 일하는 노동자’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에게 어떤 노동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겠는가.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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