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대학 물리학과 건물 안의 진열장엔 작은 명물이 하나 있다. 시커먼 타르 찌꺼기를 유리 깔때기에 담아 밀봉한 일종의 실험장치다. 망치로 때리면 부스러지는 고체의 타르 찌꺼기에도 흐르는 성질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1927년 초대 물리학 교수 토머스 파넬이 만든 장치다. 열을 가해 녹인 타르 찌꺼기를 넣은 뒤 3년 뒤부터 깔때기 밑동 마개를 열어두었으니, 지금까지 83년 동안 타르 찌꺼기는 ‘흐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장치는 한동안 진열장에 방치되었다.
1961년 이 장치가 물리학 교수로 부임한 존 메인스톤(78) 현 명예교수의 눈에 띄었다. 이후 그는 6~12년에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느리디느린 흐름의 과정을 관찰했다. 타르 찌꺼기의 점성이 물의 1000억배라는 관찰연구 보고도 발표했다. 아쉽게도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은 지켜보지 못했다고 한다. 언제는 커피를 마시러 간 사이에, 언제는 비디오카메라가 고장 나 그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타르 찌꺼기가 2000년 이후 이제 아홉 번째 방울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은 사건에 관심이 쏠리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과학저널 <네이처>가 가장 오래된 실험 중 하나로 소개했고, 영국 <가디언>과 미국 <시엔엔>이 ‘흥분의 한 방울’이 곧 떨어진다고 보도했다. 이미 이 장치는 실험실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실험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오스트레일리아 언론도 열정, 인연, 역사 이야기를 길게 전했다. 13년 만의 한 방울이 왜 이토록 흥미로울까? 아마도 타르 찌꺼기 자체보다 80년 넘게 이어진 순수한 호기심, 세월을 잇는 전통과 인내, 그리고 느린 자연 관찰에 매달리는 진지한 열정, 이런 것들을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사실 자주 잊는 과학의 매력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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