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작가
헬레네 헤게만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소설 <아홀로틀 로드킬>을 발표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완숙한 언어, 동시대 베를린의 풍경을 칼로 잘라 구겨넣은 듯 실감나는 묘사, 두통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날뛰는 분위기가 인상적인 이 짧은 소설은 곧 독일 문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전형적인 젊은 천재의 탄생 스토리는 곧 추문에 휩싸인다. 헤게만이 한 무명작가의 소설에서부터 자신이 받은 사적인 이메일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용한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저작권 문제는 출판사에 의해 해결되었지만 추문은 가라앉지 않았고, 그러나 그것조차 그의 유명세를 크게 하는 데 한몫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조숙한 십대인 미프티는 알코올중독인 어머니를 떠나 유명한 예술가인 아버지가 있는 베를린으로 온다. 하지만 베를린은 미프티의 상처를 치유하기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미프티는 곧 과거 반문화의 영광이 모조리 패키지 상품이 되어버린 포스트모던 천국 베를린에서 정신을 잃는다. 사방이 예술품으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 가장 속물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가족들, 널린 것은 마약과 상품뿐인 그 세계를 미프티는 나침반 없이 헤매며 자기파괴를 거듭한다.
어쩌면 간단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울 것 없는, 이십세기 중반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포스트모던 문학의 최신 버전이라고. 그것도 오리지널이 아니라 질 낮은 짜깁기에 불과한. 하지만 자꾸만 이 책에 마음이 가고 마는 것은, 내가 언뜻 보고 느낀 이천년대 베를린의 괴상함을 이 책이 어쨌든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표현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 번의 방문을 통해 내가 받은 베를린에 대한 인상은 한마디로 거대한 얼터너티브 상품 더미라는 것이다. 그건 ‘송두율’을 떠올리는 한국 지식인들의 베를린, 냉전과 유학생들의 도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과 언어와 도시를 포함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버린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하여 나는 얼마 전 개봉한 한국 영화 <베를린>에선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일종의 시대의식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책 속 화자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반문화적 수사로 가득한 이 책에는 애초에 새로움이나 혁신성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짝거리는 과격함은 시내의 옷가게에서 쾅쾅 울려퍼지는 노래 가사의 과격함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길이, 곧 해결책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미프티가 베를린으로 오게 된 이유가 변두리 도시에서의 어머니의 학대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늙은 히피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어머니의 이상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미프티에게 남은 것은 그저 쓰는 것이었다. 끝없는 인용, 도용과 짜깁기 없이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열등한 흔적으로서의 글쓰기. 미프티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고, 그건 어떤 희망도 탈출구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내가 늘어놓는 말들이 서글프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당신이 속한 이 시대, 이천년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혹은 아직 충분히 이천년대적이지 못한 것이다. 슬퍼할 것이 하나 없다. 왜냐하면 이천년대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천년대의 우리는 슬퍼할 마음의 주인인 자기를 더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슬픔과 분노란 또 무엇인가? 상품 카탈로그에 불과해진 이천년대의 인간들에게 그것은 미지의 영역이다.
김사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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