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넷째로 큰 섬인 인천광역시 강화도의 서북쪽에 교동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동향교가 있다. 12세기에 공자 등의 신위를 모신 문묘로 출발해 유학 교육기관인 향교로 발전했다고 한다.
교동(校洞)은 흔한 지명이다. 과거 제법 규모가 있는 지역의 중심지에는 읍성과 향교가 있었고, 그 동네는 대개 교동이나 교촌·교리로 불렸다. 교동마님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교동은 그 지역에서 가장 버젓한 사람이 사는 동네였다. 하지만 교동도라는 이름은 교동향교보다 역사가 길다. <삼국사기>를 보면 달을참, 고목근, 교동(喬桐·높은 오동나무) 따위로 이름이 바뀌어 왔다고 한다. 달을참이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이름이 교동이어서 일찍부터 향교가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교동도의 저력은 무엇보다 입지 조건에서 나온다. 바닷길로 북한 땅이 지척이고 동쪽으로 강화도나 한강 하구를 거쳐 수도권과 바로 연결된다. 남쪽으로 경기·충청 지역 서해안과 이어지고 서해 너머 중국 동해안도 그렇게 멀지 않다.
교동도에 17세기 초반 경기·황해·충청의 3도 수군을 통괄하는 수영이 설치돼 부사 겸 수군절도사가 주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후 교동도는 구한말 강화군에 통합될 때까지 행정적인 면에서 대체로 강화도보다 격이 높았다. 지금도 교동도에 가 보면 예전의 영화를 엿볼 수 있다.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이 숨을 거둔 곳도 이곳이다.
인천시가 이 섬에 평화산업단지를 만드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남쪽은 자본과 기술을, 북쪽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제2의 개성공단’ 형태다. 서북으로 북쪽의 연백군과 3㎞, 동북으로 개풍군과 8.5㎞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해주경제특구 및 개성공단을 잇는 삼각벨트의 구심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인천시는 기대한다. 지금과 같은 남북 관계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상이지만 추진 의지를 버릴 일은 아니다. 꿈은 언젠가 이뤄진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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