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캐디 일감” 마련과 “소비 진작”을 위해 “이제 좀 골프를 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회의 전 몇몇 국무위원으로부터 대표로 말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지만, 박 대통령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고 보도됐다. 그 뒤 웃음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한 장관이 대선캠프 출신의 실세 장관에게 해석을 의뢰했더니 “안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는 후일담이 나돌았다.
두 가지가 궁금하다. ‘캐디 일감’과 ‘소비 진작’을 위한 건의라면 왜 다른 국무위원들은 나서서 말을 못하고 ‘친박 원로’인 이 위원장에게 총대를 메게 했을까. 나아가 제 돈 내고 골프 하는 공직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공무원이 골프 접대를 받아도 직무와의 연관성이나 대가관계가 입증되지 않는 이상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다른 일로 걸려들었을 때 혐의에 추가되는 경우가 있지만 극히 드물다. 그러나 부조리는 여기서 싹튼다.
국민권익위가 추진해온 이른바 ‘김영란법’은 대가관계가 없어도 100만원 넘는 금품 수수나 향응만으로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대형 로펌을 넘나드는 전·현직 고위 공직자들의 회전문 인사와 스폰서 문화의 폐해를 막으려면 접대와 향응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법안을 처음 만든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생각이다. 웬만해선 대가관계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골프 접대를 서너번 받으면 징역·벌금형의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그런데 법무부와 권익위는 최근 징역·벌금형 대신 과태료를 물리는 수준으로 후퇴한 수정안을 만들기로 잠정 합의한 모양이다. 그나마 업무와 관련이 없으면 처벌해선 안 된다는 처음 입장에서 조금 양보한 것이다. 그러나 징역·벌금형에 비해 징벌 효과는 약할 수밖에 없다. 골프 해금 제안을 작당했던 국무위원들의 생각이 수정안에 반영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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