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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한국일보를 다시 ‘신문’으로 만들기 / 김낙호

등록 2013-06-23 19:36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뉴스의 미래라는 화두에 관해서 최근 몇 년간 자주 회자된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라는 개념이 있다. 온라인 활용의 붐과 함께 소식들이 늘 어디서나 넘치다 보니, 적절한 내용들을 잘 골라 모아서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정하고 달려들면 심지어 개인이라도 상당한 수준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취재를 하고 좋은 기사를 생산해내던 정규 신문이 남의 내용을 골라서 조합하는 것에만 골몰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원래 맡던 기능이 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꽤 우수한 저널리즘 품질을 자랑하던 한 종합일간지가 그런 상태에 처했다. 그간 경영 파탄에 대한 해결을 놓고 <한국일보>의 기자들과 사주가 갈등하던 와중에 사주가 용역업체의 물리력을 동원하여 기습적으로 편집국을 봉쇄하고 기자들을 쫓아냈다. 그리고는 그 대신 10여명 내외의 사측 인원들만으로 제호는 같지만 내용물은 전혀 다른 일간지를 계속 만들었다.

부족한 취재력을 대신하여 들어온 것은 뉴스통신사와 자매지 기사들의 전재, 그리고 작성자 성명조차 붙일 수 없는 짜깁기 표절이다. 첫 주 발간분의 기사 작성 내역을 살펴보면, 전체 기사의 4분의 1가량만이 자체 필진의 집필이고 절반 이상이 연합뉴스 전재 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성명을 생략한 기사다. 정상적인 일간지에서 어설픈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로 업종 전환이라도 한 듯한 모습인데, 어째 미래에 적응했다기보다는 먼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언론이 편집권 독립 같은 규범 없이 그저 사주의 사유물이어도 되었던 시대 말이다.

한국일보를 큐레이션 소식지가 아니라 다시 신문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필요한 역할들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사법적 차원으로, 사주의 배임과 부패에 대한 수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이없게 쫓겨난 기자들에게 편집국을 돌려주는 가처분 결정을 최대한 조속하게 내어야 한다. 이것은 검찰과 법원의 몫이고, 정치권의 압박이 도울 부분이다.

또 하나는 언론업계의 내부 개혁으로, 이 사건을 통해 다시금 드러난 편집권 독립의 문제, 그리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언론사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다. 재벌식 회장이든 공영방송 낙하산 사장이든, 사주가 저널리즘적 가치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어떻게 규제할 것이며 동시에 그가 기업 건전성 추구에 매진하도록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시민 일반의 몫이다. 널리 관심을 기울이고 토론해서 정치권이든 언론업계든 그것을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슈화라는 역할 말이다. 원래의 한국일보는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은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어느 진영의 편을 들어주는 것에는 신중한, 국내 중앙일간지로서는 드문 성향의 신문이었다. 그런데 편들지 않음은 저널리즘 규범으로는 강점이지만, 사람들과 ‘네가 내 편이 되어주었으니 나도 네 편을 들어주겠다’는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만드는 것에는 큰 약점이다. 그렇기에 조금 그것과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진영으로 갈라지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편 들어주지 않는 언론이야말로 역할이 중대하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렇게 계속 어느 편도 안 들어줄 수 있도록, 우리가 지지한다’는 인식이 좋겠다.

쉽게 편들어주지 않았던 한국일보가 다시 기자들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필자는 그 기자들의 편을 들어주고자 한다. 부디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시기를 권유하고 싶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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