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1963년생 진중권이 <미학 오디세이>를 출간한 것이 1994년이다. 그의 나이 서른이 막 지났을 때였다. 이윤기·정재승 등 대중 저자들 중에는 20~30대에 데뷔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 최근 젊은 필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고 나는 동의했다.
사실 필자에게 ‘데뷔의 시기’가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대중적인 저자가 된다는 것’은 필자 자신의 준비와 역량, 공급자의 선택, 사회와 독자의 조응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잘 쓴다’고 인기 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그러나 특정한 세대가 특정한 시대의 필자로 부상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새로운 필자가 등장해야 할 때인데도 ‘이렇다 할 다른 필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젊은 필자’보다도 ‘새로운 필자’ 자체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한국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로 여겨지는 1990년대에는 각종 문화지와 무크, 피시통신이 많은 필자를 데뷔시켰다. 2000년대 초반 잡지 붐 때는 오늘날 기업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처럼 많은 ‘쌔끈한 퀄리티’의 잡지들이 무가지로 배포됐다. 이를 소화할 기고가, 인터뷰 대상자, 일러스트레이터, 만화 작가 등이 등장했고 감성 잡지들도 출현했다. 이 시대에 자아를 확장한 세대는 나날이 망해가는 소설 시장의 끝을 부여잡기보다는 자유기고가, 칼럼니스트, 평론가 등의 포지션에 끌렸고, 따라서 이 세대의 귀결은 명백했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자 자본으로 황폐화된 문화 저변과 독자들의 변한 입맛으로 상황은 바뀌어 있었다. ‘문화생산자’라는 말은 더는 멋지게 들리지 않았고, ‘88만원 세대’라는 찌질함만이 이들을 반겼다. 이 세대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여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 몇몇 20대들이 깃발을 꽂고 자신의 서사를 써나갔다. 문화운동을 한 한물간 386세대들은 이것을 칭찬했고, 그 미약한 성과를 세대론의 ‘청춘답가’로 포장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첫째로 출판, 그들은 모든 책에 ‘청춘’을 쑤셔 박았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 ‘청춘’이 남발되었고, 스스로 청춘이라 여기는 이들만이 그 책들을 사서 읽었다. 둘째로 언론, 좀 쓰는 친구들이 공인된 매체에 글을 쓰려면 소재와 주제와 상관없이 ‘세대론’으로 수렴되었다. 젊은 필자는 정치 비평을 해도, 글을 써도, 섹스 칼럼을 써도 ‘20대 필자’라는 명분으로만 기능했다. 셋째로 글 쓰는 젊은 필자들 자신, 이들은 다양한 담론의 영역을 살피기를 포기한 채 자신들의 작업에만 몰두했다. 문제는 이들이 인정투쟁에 함몰되거나 메타비평의 영역에서만 데뷔를 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뭘 해도 ‘세대론 필자’가 되고, 자유기고가의 삶은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안 팔리니, “나 좋아하는 걸 하며 들이대겠다”고 할 수밖에.
기술이 발전하고 매체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팟캐스트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젊은 친구들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데뷔 아닌 데뷔’들을 치르고 있다. 세대론이라는 지긋지긋한 테마를 벗어나려면 동세대 필자를 그대로 인정하고, ‘청년 좌파’에 한정되지 않는, 더 많은 날것의 목소리를 공론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각자 고립된 발언들을 보편성으로 묶어내는 것, ‘내 세대를 위한 출판을 하고 싶다’는 편집자인 나의 고민이다. 이것이 세대를 넘어 ‘새로운 필자’를 발견해야 하는 우리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 아닐까.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 소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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